▲ 김형태 법무법인 저스티스 대표 변호사 |
사실 대통령은 태양왕이라고 불렸던 루이14세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헌법위에 군림하였으니까. 그런데도 지금은 그 어두운 시절이 마치 아름다웠던 추억인양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꽁보리밥에 국수를 먹어야 했던 가난한 시절의 추억으로만. 그리고 이제 쌀밥을 먹고 좋은 아파트와 자가용을 가질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게 해 준 위대한 대통령으로서 기억하는 것이다.
독재정치가 나쁜 점은 어떤 사회이든 그 사회에 속한 사람이면 누구나 자유로운 생각과 능력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함에도 이러한 기회가 억압된 정치적 힘에 의하여 비틀려져서 사회 전체의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어 간다는 점일 것이다. 유신시절을 돌이켜보면서 인간이란 참으로 잊기 쉬운 동물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살기가 조금 나아졌다고 잘못을 잊고 다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분명 일제침략 후에도 경험하였는데도 또 어리석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유신시절의 시대적 산물은 바로 소수 재벌에 의한 우리경제의 지배구조였다. 해방 후 친일세력이 득세했듯이 지금도 여전히 유신시절 정치적 힘의 후광을 안고 성장했던 재벌들이 우리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모든 것이 정의라고 불리는 법의 역할이었다면?
법원이나 검찰, 그리고 변호사까지 모두 정의의 여신상을 그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 손에는 칼, 또 한손에는 천칭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 그러나 과연 '법은 정의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법조인으로서 필자는 자신이 없다. 아니 분명한 것은 독재정치, 재벌에 의한 경제의 지배구조는 바로 이를 보호해 준 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법은 이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 우리는 법이 정의롭기를 바란다. 아니 반드시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법은 법을 만든 사람의 생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법조인은 이러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악법이라 하더라도 악법을 벗어나서 예전의 만화주인공 '세일러 문'의 요술봉처럼 '정의의 이름으로'라고 외치면서 악법을 차고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누구는 이렇게 강변할지 모르겠다.
정치적인 법이 아닌 개인 상호간에 적용되는 사법에서는 다르다고. 하지만 사법상의 대원칙이라고 하는 '계약자유의 원칙'을 정말 정의로운 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계약의 자유란 경제적인 인간,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약삭빠르고 계산적인 인간을 전제로 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또 사법관계에 적용되는 법, 역시 정의롭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근로계약을 보면 계약자유의 원칙이란 단지 '사용자 우월의 원칙'이라고 대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계속)
법무법인 저스티스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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