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복 극작가, 꿈 실현 아카데미 대표 |
논어 위령공 편에는 '군자는 구저기하고 소인은 구저인이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는 잘못을 나에게서 찾으며, 소인은 잘못을 남에게서 찾는다는 뜻이다.
잘못을 나에게서 찾으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향내가 아닐 수 없고, 잘못을 남에게 돌리니 구린내가 아닐 수 없다.
입만 벌리면 남 탓만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귀담아들을 경구다.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내 탓이오'를 역설하셨다. 모든 게 내 탓이다. 내 탓으로 돌리니 악취가 나지 않는다. 모든 게 내 탓 아닌 게 없다.
내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을 자아 수용(self-acceptance)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 생기는 마음이다. 그래야 나도 편하고 남도 편해지는 것이다. 참으로 그런 세상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
논어에 나오는 이 말과 추기경께서 하신 말씀이 일부 정치인들의 '네 탓'만을 외쳐대는 행태를 보고 하신 말씀이라면 한국 정치인들의 입은 어디에 속할까.
추기경님의 '내 탓이오'를 들었을 때 필자는 콜레스테롤 범벅이 된 핏줄에 둥근 젖산균이 들어가 말끔히 씻어내는 기분이었다.
구약성경의 잠언에도 네 탓으로 돌리려는 자에 대한 경구가 나온다.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한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진다.'
이 또한 잘난 체 온통 하며 입으로 매를 자처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귀담아 들을 내용이다.
'나라를 위한다. 국민을 위한다. 그래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너무 아리송한 말이고 믿기지 않는 말이다. 누가 믿겠는가. 거리를 막아 교통 체증이 일어나니 짜증만 날 뿐이다. 그게 정말 국민을 위하는 일인가. 투쟁한다는 장소마다 나타나는 얼굴들이 그 얼굴이니 식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에 맹자 이루 하편에 나오는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다.
'제나라의 어느 사내가 매일 술에 취해 돌아와서는 오늘도 어느 고관의 연회가 있어 술 한 잔 했다고 뽐내었다. 하루는 아내와 첩이 남편을 미행했다. 만나는 누구도 없었다. 끝내 동쪽 성곽의 묘지 사이에서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가더니 그 남은 음식을 구걸해 먹고 부족하니까 또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곳으로 가서 묘지에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가 배부르게 먹는 방법이었다. 그 모양을 보고 집에 돌아온 아내와 첩은 서로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다.'
이런 정치인은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더구나 국가나 국민을 위한다는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고관대작과 한 잔 했다고 허풍만 떨 따름이다. 그의 허풍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측은지심을 받게 된다.
길거리에 나앉아 투쟁하는 사람들이 받는 측은지심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전자는 연민의 정이, 후자는 비웃음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사약을 마시고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덮치기 시작하자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 빚진 게 있으니 꼭 갚아 달라.' 비록 작은 것이지만 법적 도덕적 의무는 다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나온 말이다.
정치인이라면 법적 책임에 앞서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면 현실 정치에 종교 지도자나 교육자가 개입해서도 안 되며, 네 탓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가정에서 가장이 네 탓을 주장하고, 회사에서 CEO가 네 탓을 찾는다면 가족들과 회사원들은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하물며 정치인들이 그런다면 누가 불행해질까. 답은 뻔하다. 그래서 짜증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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