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재연된 입학 지원자 감소를 예사로 볼 일 아니다. 운영 면에서도 건학 이념에 따른 다양한 교육과정을 만든다는 취지는 시행 초기부터 퇴색됐다. 지난 몇 년간의 실적만으로 자사고 정책이 전면 실패했다고 단언하기 이를지 모른다. 하지만 고교 다양화 정책 취지를 벗어나는 등의 부작용을 종합하면 총체적 위기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 실현에 역부족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교육목적, 교육재정 등 종합적인 안목의 새로운 처방이 필요해 보인다. 적어도 장기 비전과 로드맵을 내놓지 못한다면 존립 이유가 없다. 물론 학교 및 정원 대폭 축소나 일반고 전환 등 무력화 방침을 내세우기 전에 위기 극복 방안이 나오는 게 순서다.
어쨌든 지난 정부의 작품인 자사고 정책이 이제 본격 시험대에 섰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 됐다. 대전의 경우 무리한 자사고 추가 승인도 지적받았지만, 자사고 간 양극화가 현실화된 것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서울에서도 모집 정원의 1.5배를 넘는 학교는 소수에 그치는 형편이다.
일반고의 위기를 키우는 일종의 특례제도처럼 비쳐져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하는 것 역시 문제점이다. 교육과정 자율성이 국·영·수 중심의 입시교육 강화에 불과하다면 다양화 정책과 무관할 수밖에 없다. 자사고 태동 당시 우려됐던 고교 서열화, 교육기회 불평등 확대 같은 부작용이 고착화되기 전에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귀족학교 별칭이 붙게 한 비싼 학비도 자사고 운영 개선의 핵심 사항이다.
대전지역 총정원 1015명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수험생과 학부모의 선택에서 외면받는 자사고, 그 시행착오는 이미 겪은 것만으로 충분했다. 입학 정원 미달 원인을 “내신 관리의 어려움과 높은 학비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을 꼽는 분석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문제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면서 수평적 다양화로 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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