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
필자는 올 여름방학에 일본의 시마네현과 후쿠이현을 방문했는데, 도시는 영화세트장 같이 깨끗하지만 경제활동에 가장 필요한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고령화된 노인들만 간간이 지팡이 짚고 오갈 뿐 활기가 없어 보였다. 실제로 2010년 이후 일본 전기전자업체 10개사의 연간 당기순익은 삼성전자 1개사보다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수만여명의 직원을 감축 혹은 재배치하는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2020년 동경올림픽을 앞두고 뭔가 계기를 만들고 싶어 아베총리가 아베노믹스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듯 일본기업들은 2000년대 이후 저수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기술이 뒤처졌다든가 설비투자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경영자의 결단력에 문제가 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보통 우리나라는 오너자본주의라고 표현하고 일본은 법인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즉, 오너가 있는 기업은 의사결정이 빠르다. 과거에는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나라 발전에 저해된다고 없애야 한다는 운동까지 펼쳤지만 IT시대에는 빠른 의사결정이 대접받는다. 이와 반대로 일본의 의사결정은 상당히 신중하다. 90% 이상이 주인이 없는 기업이다. 그럼 일본의 CEO는 누구인가? 보통 일본의 CEO는 신입사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승진하고 그 중 똑똑하다고 보이는 친구가 된다. 그래서 일본 기업의 의사결정이 명령체계가 아닌 '합의제' 방식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애플의 아이폰을 보고 충격으로 받아들여 삼성 연구진에게 당장 스마트폰을 만들라고 하면 과장해서 표현해 1주일이면 된다. 못 만들면 그만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본은? 턱도 없다. 과거 제조업시대에는 요리저리 따져 보고 신중하게 결정해도 소비자 요구에 걱정 없지만 오늘날은 소비자 요구의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따질 시간이 없다. 그런데 일본의 경영자는 결정할 능력과 권한이 한정되어 있어 IT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일본의 기술을 따라잡았고, 기술강국 일본을 따돌릴 만큼 앞서있다고 보는가? 그런 점에서 이제 근본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가 보자.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이란 책을 쓴 유명한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이후 'TRUST' 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국가의 경쟁력은 신뢰라고 하는 사회적 자본의 수준에 의하여 결정된다”. 즉 한 나라의 경제는 규모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관습, 도덕, 협동심과 같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덕목인 신뢰도가 높은 국가나 기업일수록 거래비용은 절약되고 정보의 흐름은 수월해지기 때문에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미국, 일본, 독일이 바로 고신뢰국가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개월 전 정홍원 국무총리 역시 부처간 비효율을 막을 고신뢰 국가기간망 인프라를 구축하라고 강조했지만 고신뢰국가란 IT 기술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국민이 국가를 신뢰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기에는 2% 부족한 점이 있다. 우리가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문제, 그리고 위안부할머니 문제 등 한일간 풀 수 없는 외교 '3종세트'를 논외로 한다면 일본은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세계 제2의 선진국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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