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갑 중구청장 |
차가운 날씨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그보다는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을 생각하며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저녁이면 밥을 짓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피우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고향집으로 돌아가 어머님이 아궁이에 불을 때서 해주신 저녁밥을 먹고 따뜻해진 방에서 어머님의 무릎을 베고 옛날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 시절의 어머님들은 모두가 그렇게 사셨다.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 현금수입은 거의 없고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지만, 텃밭이라도 일궈 채소를 키우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가족들을 위해서 밥을 지어 당신께서는 거친 보리밥을 드시고 남편과 자식들에게는 쌀밥을 먹이셨다.
그런 한없이 커다란 모정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아마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구청장에 취임해보니 구청의 채무가 100억원에 가까운 97억원이었다. 모두가 지방채를 발행한 것이었는데 이 빚은 누가 대신 갚아줄 빚이 아니라 전액 우리 중구민이 내는 세금으로 갚아야 할 빚이었다.
선거 당시 구청에 빚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100억원이 가까운 금액이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때 어린시절 시골에 살 때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해주시던 어머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시골에서 어려운 살림에도 모든 것을 아껴가며 당신은 보리밥을 먹고 자식들을 위해서는 쌀밥을 내놓으시던 어머님처럼 아끼고 절약하는 구청살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취임 첫해에는 직원들의 이해를 구하고 경상경비 10%를 줄여 당장 지급해야 할 부분에 예산을 지원했으며 각종 축제와 종목별 체육대회도 모두 취소했다. 그러자 예산 부족사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구민들은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지방채를 발행해서 계속 풍족하게 구청살림을 꾸려갈 수 있었지만, 어머니 같은 알뜰한 구청장이 되기로 한 이상 내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알뜰하게 구청 살림을 한 결과 지금까지 추가로 지방채 발행을 하지 않았으며 구청의 빚도 현재까지 약 8억4천9백만원을 갚았으며 연말까지는 약 11억원을 갚을 예정이다.
구청 예산은 복지예산과 물가 증가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위탁하지 않고 대형폐기물을 직접 수거하는 정책으로 전환한 것을 비롯해서 선심성 예산을 최대한 억제했다.
이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예산을 줄여 지방채를 발행하지 않고도 오히려 빚을 갚아 나갈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예산절감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중구청 공무원들과 중구 구민들이 있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기초행정은 과유불급이라고 생각한다. 1970년대 정부는 저축캠페인을 벌였다. 우리의 어머님들은 못 먹고 못 입었지만 자식들을 위한 학자금은 아끼지 않았으며 오히려 한 푼 두 푼 모아 저축을 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고, 있을 때도 없을 때를 대비해서 아끼고 절약하며 살아가신 분들이 바로 우리의 어머님들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살아가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풍요로운 시절이지만,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로 접어드는 11월을 맞아 다시 한번 어릴 적 시골에서 고생하며 살아가신 어머니를 가슴에 담아보자.
더불어 아직도 어머님이 시골에 계신 분이 있다면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안부를 묻는 전화라도 해서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는 가을 저녁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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