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철중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장 |
사랑과 미움과 배신이 엉킨 이 오페라에서, 이탈리아 통일(1870)의 일등 유공자인 베르디의 애국심의 일단이 엿보인다. 지난 17~20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이 공연 예산의 4분의 1을 들여, 이 고장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제작한 아이다가 공연되었다.
공연이 대성공이라면 3분의 1은 무대 덕분이다. 조달청 입찰의 한계가 아쉽다는 시각도 있지만, 때로는 예산부족의 고민 속에서 순간적인 창의력이 번뜩이기도 한다.
아이다의 피부는 물론 왕과 사제와 무용수가 온통 흰 “백색의 아이다”에 걸맞게 무대도 백색이었다. 피라미드를 모티브로 한 기하학적인 설치미술은 추상의 미니멀리즘이었다. 두 개의 중앙 조형물을 보자.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는 형상은 창조주가 아담의 손끝에 생명을 불어 넣는 순간을, 정육면체를 꿰뚫은 창은 영화 오멘에서 천사 미카엘의 분노의 창을 연상시킨다. 사랑과 미움의 극적인 형상화다.
왼쪽의 비스듬한 층계는 훌륭한 설치미술인 동시에, 4막에서 위로 들리면서 돌 감방이 지하임을 암시하여, 자연스럽게 베르디가 창안한 이중무대를 완성한다. 결국 천문학적인 예산이 드는 구상의 현실감과 스펙터클을 잃은 대신, 인간적이고 격조 있는 추상의 무대로 거듭나서, 압도적인 웅장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3막부터는, 연기를 더욱 밀도 있게 보여주었다. 무대디자인의 임창주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출연진을 보자. 장내를 쩌렁쩌렁 울린 부왕 아모나스로 역의 바리톤 고성현은, 기대한대로 컨디션과 객석반응 모두 만점이었다. 베르디 자신이 “연기력 있는 메조소프라노”로 못 박은 암네리스의 추희명은, 시미오나토나 코소토가 부럽지 않았고, 고성현과 함께 오페라의 무게를 잡아준 두 기둥이었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스타보다도 믿음직한 단역인 것처럼, 전령 손정영씨의 테너는 짧은 출연에도 뚜렷한 존재감을 보였다. 프리마돈나 한예진씨는 이미 차고 넘치는 디바지만, 나날이 정진을 보여준다.
작년의 토스카나 라보엠보다, 발성의 응집력과 뻗어나가는 힘이 무르익었다. 고음을 가성처럼 처리할 때 크레센도와 디크레샌도를 애드립처럼 반복하여 전달력을 높이고, 알토 못지않게 저음에서 약간 변하는 듯한 풍부한 음색은, 개성 있는 트레이드마크로 발전시켜 볼만한 매력 포인트다. 참신하고 역동적인 대전예고의 춤과 아트홀이 자랑하는 합창 음질의 장점을 잘 살린 인천오페라합창단 및 포천시립합창단도 일품이었고,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또한 일등공신이다.
마무리로 옥의 티를 보자.
초반에 제1막 김중일의 “청아한 아이다”는 고음이 부담스러웠다. 좌우 2개씩의 트럼펫이 주고받는 개선장면에서 약간의 애교 섞인 실수가 있었다. 발레의 파드되는 발레리나를 들어 올리는 동작이 힘에 부쳤고, 에티오피아 포로숫자는 더 늘리는 것이 바람직했다. 혼신을 기울인 파워풀한 고음에서 아이다의 열창은, 조금만 더 힘을 빼고 예쁘게 다듬었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약간의 보강을 거친다면 국제무대에 올려도 전혀 손색이 없을뿐더러, 무대디자인에 창조적인 개념 전환을 시도한 근래에 드문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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