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명렬 대전남부교회 담임목사 |
지난 1973년부터 1976년 사이 청계천변 판자촌 사람들의 삶을 담은 사진집이다.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 공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는 과정 가운데 도시 빈민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허름한 판자로 벽을 만든 판잣집 속에 도시의 고단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또한, 아침이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지금은 상상도 못할 공중 화장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빈곤의 현장에서 이 사진들을 찍으며,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간직하고 있던 사람은 한 일본인이다.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 올해 팔순을 넘긴 일본인 목사이다. 193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고 미국 유학을 마친 노무라 목사는 엘리트 지식인이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범죄성을 인식하고 1961년부터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을 돕는 일에 앞장섰다. 특히, 그는 1970년대 청계천변의 빈민촌에 관심을 뒀다.
그는 고(故) 제정구 의원과 두레교회(당시 활빈교회) 김진홍 목사 등과 함께 도시 빈민 선교에 힘썼다. 1974년 노무라 목사는 김진홍 목사의 안내로 청계천의 빈민가를 심방한다. 한 집을 찾았는데, 실내가 너무 어둡고 캄캄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창문도 없이 방은 사방이 다 막혀 있었고, 방안이 비좁은 탓에 대각선으로 누운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병을 앓고 있었다. 소녀의 옆구리 밑과 무릎에는 하얀 뼈가 드러났을 정도였다. 상처부위엔 파리 떼가 뒤덮고 있었다. 더욱이 파리떼가 소녀의 다리에 알을 낳아, 구더기가 생겨났고, 구더기가 살을 파먹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참상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김진홍 목사와 노무라 목사는 손으로 구더기를 하나하나 잡아냈다. 하지만, 잡아내려 하면 더욱 살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구더기를 떼어 내기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 치료를 받게 도와주었으나 소녀는 결국 두 달 후에 숨을 거뒀다.
노무라 목사의 글에 보면, 한 번은 청계천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했는데 아무도 시신을 수습하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활빈교회 사람들과 함께 대나무에 끈을 매 시신을 끌어냈다. 시신은 며칠 동안 물에 있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눈이 튀어나와 있었고, 배는 부풀어 올라 있었다.
노무라 목사는 무연고 시신을 닦고 화장을 해 청계천에 뿌려 준다. 이에 사람들은 노무라 목사를 '빈민들의 성자(聖子)'라고 불렀다. 당시 노무라 목사만 아니라, 도시 빈민들의 자활(自活)을 위해, 또 그 자녀의 공부를 위해 애쓴 사람들은 많았다. 탁아소를 운영하고 야학을 통해 그들을 도운 많은 사람이 있다.
노무라 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이같이 썼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청계천은 지옥이라고 말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옥과 같은 그곳에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고, 희망이 있고, 오순도순 서로 돕고 살아가는 정이 있었다. 나는 바로 그런 것이 천국 일부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시 서울의 대형교회에 다니면서 예배를 드려봤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 대 부흥회에도 참석했었다. 물론 그곳도 천국의 한 모형이다. 하지만, 청계천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훌륭한 천국의 모형이었다.”
노무라 목사는 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을 50여 차례 방문하며 도왔다. 도쿄에 있는 자기 집을 팔아 빈민촌에 탁아소를 세우게 했고, 남양만 간척지로 간 이주민들을 위해 뉴질랜드 소 600마리를 기증했다. 한국을 위해 그가 기증한 돈은 7500만엔(8억원)이 넘을 거라고 한다. 노무라 목사는 작년에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동상 앞에서 헌화한 뒤, 회개 기도를 했다. 또 일본강점기 민족의 애환을 담은 '봉선화'를 플롯으로 연주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펴왔고,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나고자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나 노무라 리포트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 있다.
'이제는 앞만 보지 말고, 옆을 보고 네 이웃을 보라'는 것이다. 이미 40년 전에 몇몇 선각자들이 행한 일들을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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