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혜진 목원대 교양교육원 교수 |
이 시는 늦가을 산의 단풍에 대해 노래한 것이지만 우리 인생의 가을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풍상고락을 겪은 뒤 제 몸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의 향연은 이삼월 춘풍에 살랑거리는 봄꽃의 그것과는 다른 웅장함이 있다. 마찬가지로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가는 삶의 여정은 그 자체로 숭고하고 비장하다. 그런데 우리는 잘 나이 들고 있는 걸까?
벌써 올 한해도 불과 두 달여를 남겨두고 있다. 뒤돌아볼 틈도 없이 사느라 바쁘게 달려온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2013년의 역사를 이루어갈 터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또 한 살도 늘어난다. 20대 때에는 시간도 더디 가더니 40대가 넘어서는 하루가 어찌 가는지도 모르게 쏜살같이 흘러간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단풍도 쳐다보고, 인생도 뒤돌아보아야 할 시기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생이 숨가쁘기도 하거니와 이제 놓친 것이 없는지 뒤돌아 챙겨야 할 때인 것만 같다. 세계적 철학자 슬라보예 지제크는 지난 달 경희대 강연에서 “과도한 경쟁과 고용취약 때문에 한국의 일상생활은 물론 감성의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우리의 중년 40, 50대의 일상을 마치 들여다본 듯한 말이다. 한국사회의 척추 역할을 하는 중년의 이 시기는 성과와 경쟁에 시달리느라 날마다 전쟁을 치르듯이 하루가 간다. 더욱이 입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뒷바라지와 버거운 대학등록금을 대야하는 중년의 책임은 무겁게 매일을 짓누른다.
'힐링'이니 '치유'니 하는 과도한 열풍이 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삶의 무게에서 오는 상처때문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상처는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 많다. 스스로에게 낮은 자존감, 상대방과 비교하여 얻는 열등감, 해결되지 않는 분노로 만들어진 화병,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되는 인간관계, 과도한 욕망과 그에 따른 좌절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중 대다수는 관계로부터 오는 것들이다. 결국 다른 사람들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상처와 그에 대한 회복의 과정이 삶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자아가 성숙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곧 상처가 있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통해 얻어진 것이며, 그것은 내가 고립되어 아무 상처도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나은 일이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존경과 배려를 받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나이 든 사람으로서의 덕목과 지혜를 갖추지 않으면 또다른 소외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대로' '잘' 나이 드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하버드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개방적 사고와 봉사, 노화에 대한 순응, 주체적 의지, 유머와 놀이, 과거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호기심, 친구들과의 친밀한 관계 등이 행복한 노년을 만들기 위한 조건으로 나타났다. 돈이 많고 적음보다는 봉사와 배려로 자신을 낮추고 즐거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잘 나이 들어가고 있는가를 다시 묻는다.
한 집안의 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끌고 나가는 일꾼으로서 우리는 나잇값을 잘 하고 있는가 성찰하는 일이 필요하다. 개인적 영달을 위해 권력에 아첨하며 국민들을 우롱하는 잘못된 '어르신'들은 없는지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고집불통'과 '같은 말 반복하기'를 계속하고 있는 정치권의 어르신들은 잘 나이 들고 있는지 잠깐 멈추어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를 생각해보시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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