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가을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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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가을의 사색

[목요세평]김형태 한남대 총장

  • 승인 2013-10-30 13:58
  • 신문게재 2013-10-31 16면
  • 김형태 한남대 총장김형태 한남대 총장
▲ 김형태 한남대 총장
▲ 김형태 한남대 총장
벚꽃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데, 단풍은 설악산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것 같다.

아마도 계룡산의 가을은 11월 3일쯤 단풍이 절정에 이를 것이라 한다. 가을산은 봄 산보다 장중하고 아름답다.

“깊어가는 가을 짧아진 햇살을 늘리려는 듯 몇 안남은 매미소리는 시간을 돌리려는 듯 구성지다/비 온 뒤의 가을은 퇴색해가는 자연과 성숙해가는 인간의 고뇌를 안고 소슬바람에 사라져 가지만/여름의 흔적을 일깨우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우리의 삶을 한 번 더 뒤돌아보게 해준다/가을햇살은 이별축제의 후원자처럼 오늘도 하나의 물감을 던져주고 뉘엿뉘엿 서산을 향한다/지겹다던 장마도, 짧다던 가을도 모두가 짧은 것을, 세월이 대신 먹어치우는 인간들의 고뇌와, 계절이 일깨워주는 한해 한해의 명언들/이 가을에는 우리 모두 즐거운 것만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행복한 중년) 가을이 봄보다 아름답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투명한 가을 분위기는 인정을 느끼게 하고 친근감을 준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향해 해맑게 핀 코스모스를 보면, 정녕 가을은 봄보다 아름답다.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가을이라는 계절 속에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꽃이 할 일은 그곳이 어느 곳이든 뿌리를 내려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것이고, 우리가 할 일은 어느 곳이든 발이 닿는 그곳에서 열심히 일해 자기 이름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름 모를 들풀도 우리를 일깨우는데, 천하보다 귀한 우리들은 더 많은 일을 해야 될 것이다. 자연은 불평하지 않는다. 자연은 인내한다. 자연은 기만하지 않는다. 자연은 진실하다. 자연은 목적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가을은 온 산하의 수많은 단풍들로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우리가 겸손한 자세로 단풍잎 하나를 보면서 삶의 소박한 진리를 알아낸다면 참 좋겠다.

우리들은 확실히 가을에 많은 것을 생각한다. 자신의 미래도 좀 더 멀리 내다보게 되고, 오늘의 내 모습도 세심히 살펴보게 되며, 다른 이의 삶에 대한 관심도 더해지고 있다. 가을이 되어 이렇게 생각이 깊어지면 우리는 그 생각의 틈새에서 사랑이 자라나는 것을 느낀다.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외로움을 느낄 때, 우리는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고 인간의 연약함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사랑의 무한함에 감사를 느낀다. 맑고 투명한 하늘을 올려볼 때 우리는 진실의 문을 열고, 사랑이라는 귀한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가을은 우리를 외롭게 한다. 왠지 쓸쓸하고, 수많은 그리움이 고개를 들며, 생명의 유한함에 더욱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추슬러 일으켜주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을 가을되게 하는 시 몇 편을 함께 나누고 싶다. ①“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가을에는 저 가을 하늘처럼 맑은 마음과 높은 꿈, 푸르른 청년의 기상을 주옵소서/가을에는 저 문 앞 감나무처럼 소담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가을에는 저 들녘 벼이삭처럼 겸손하게 하소서. 알차고 풍성하게 하소서/가을에는 저 물든 단풍잎처럼, 만나는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는 평화의 사도가 되게 하소서/가을에는 인생을 생각나게 하소서. 떨어지는 한 잎을 바라보며 죽음을 준비하게 하소서/가을에는 부활이 생각나게 하소서.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더 좋은 하늘나라 영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홍덕순 목사) ②한무제(漢武帝)의 추풍사(秋風辭)도 이 시절에 한번쯤 읽음직한 시다. “가을바람 이누나 흰 구름은 날리고, 푸나무 누른잎지네, 기러기는 남으로 돌아가는데… 난초는 빼어나라 국화는 향기롭고, 그리워라 아름다운 사람! 잊을 수가 없어라. 물결위에 누선(船)띄워 분하(汾河)를 건너가네. 중류(中流)를 가로지르니 흰 물결이 솟는구나. 젊음이 얼마나 될꼬 늙음은 또 어이하리. 퉁소소리 북소리 울려 뱃노래도 흥겹고야 지루한 즐거움에 서글픔도 많아라.” 옛사람들은 산과 강을 찾을 수 없을 때 산수화 한 폭을 걸어두고 누워서 유람을 즐겼다 한다. 그것을 일러 와유(臥遊)라 했단다. ③내친김에 유우석(劉禹錫 / 당나라 때 시인)의 <가을바람> 한 편을 더 읽어보자. “어디에서 가을바람 오는가?(何處秋風至) 소슬히 기러기 떼 배웅하는 곳(蕭蕭送雁群). 아침이면 뜨락의 나무에도 밀려와(朝來入庭樹) 외로운 나그네가 맨 먼저 듣네(孤客最先聞).” 여기까지 오고 보니 朱熹의 권학시 한 토막이 생각난다.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己秋聲”(뜰 앞의 잔디가 봄꿈을 채 깨기도 전에 계단 앞의 오동나무는 벌써 가을소리를 내는구나). 세월이 이렇게 빨리 가니 우리도 할 일을 잘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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