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이 밖에도 청소년들이 즐겨 쓰는 줄임말이 많이 있는데 입으로 전하기 곤란한 욕설이나 비속어들도 많아 마음이 편치 않다. 예수께서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마태 15:11)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비천한 말로 본의 아니게 심성을 어지럽혀 나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안타깝다. 그러나 거꾸로 그들이 왜 그런 말을 즐겨 쓰는지, 그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도 든다. 청소년들의 줄임말과 비속어에는 나름대로 사회에 대한 비판과 냉소, 개인의 좌절과 분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이라는 말은 제목만 거창한 책들에 대한 비판이고, '열폭'(열등감 폭발)은 화 잘 내는 사람에 대한 희화적 대치방법이고, '모솔'(모태 솔로)은 평생 연애를 한 번도 못해 본 사람의 애교 섞인 푸념일 것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표현처럼 우리 청소년들의 애환과 기대를 담은 '언어놀이'(language game)는 나름대로 활발하게 성업 중이다.
그 중에서 '장미단추'라는 줄임말이 특히 주목을 끈다. “장거리에서 보면 미인이지만, 단거리에서 보면 추녀”라는 뜻이 '장미단추'라고 하는데 너무 재미있는 표현이어서 한참 웃을 수 있었다. 사실 이 말이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담은 말인 것 같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대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참으로 멀리서 볼 때는 그럴 듯 하다가도 가까이서 알게 될 때에 실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사회 지도자들의 비리가 폭로될 때마다 우리는 '장미단추'를 경험하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옛날 로마인들도 “시종(侍從) 앞에 영웅은 없다”는 격언을 즐겨 말했던 것 같다.
'장미단추'는 학문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지적이 될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학자들은 시각적 전환, 즉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여 놀라운 성과를 이룩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진화론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마이클 베히(Behe) 교수는 거시생물학적 관점이 아니라 분자생물학적 관점에서 진화론을 반박할 수 있다는 다윈의 블랙박스라는 책을 발간하여 활발한 논쟁을 유발하였다.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진화가 맞는 것 같지만 현미경으로 분석해보니 진화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는 주장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생은 과연 무슨 도구를 가지고 관찰하여야 더욱 의미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우리 인생도 망원경을 가지고 장거리에서 보면 아름답게 보이고, 현미경을 가지고 가까이서 보면 초라하게 보이는 것 아닐까? 너무 자세히 알면 다친다는 농담처럼 우리의 너무 근시안적 태도가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현미경으로 관찰한다면 제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겹겹이 쌓인 피부각질층 이외에는 보여줄 수 있는게 없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의 '장미단추'라는 줄임말이 담고 있는 지혜에 경의를 표하면서 그 순서를 약간 바꿀 것을 제안하고 싶다. '단추장미' 곧 “가까이서 볼 때는 추해보여도, 오랜 세월을 놓고 보면 아름다운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청소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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