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팀장 |
“우리집 양반은 이장 일 봤는디, 손 다쳐서 병원에 입원중이었어. 기름 터진 다음날 퇴원하느라 치료를 제때 못해서 손가락이 불구가 됐어. 그럼 뭐허나. 결국 몇 달 전에 암으로 저 세상으로 갔어. 그때 스트레스 하도 받아 암이 재발했어. 마을 이장이 생계비 분배하구 기름방제 작업 공공근로 같은 거 처리하구 그랬거든. 마을 사람들이 누구는 얼마 주고 누구는 안준다고 욕하구. 어떤 동네는 이장이 돈 떼먹었다구 고소했댜. 그래서 암이 재발해서 죽은 거 같어.”
“지금은 조개만 캐서 생활하고 있어. 여기 의항리는 직격탄인디 기름이 안들어간 곳까지 보상액이 분산돼서…. 현재 들어온 보상금은 ?어. 또 삼성에 협조 안한 동네는 시설비도 전혀 ?었구. 실제 어민들이 바라는 건 보상인디. 기름 냄새 땜에 방제작업 하다 졸도도 하구. 방제복 안입고 작업하다 기름 독으로 피부가 헐고 딱지 붙고.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노인은 작년에 조개캐러 갔다가 결국 물에 떠밀려가서 시신도 못찾었어. 암환자도 많아졌어. 지금도 바닥을 파면 냄새나고 기름이 뜨기도 혀. 흙도 썩어 시커멓고 바지락도 어떤 건 냄새나고 어떤 건 안나고. 지금은 굴 양식은 아예 못허지.”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혀. 그 당시는 딱 죽고 싶은 맘밖에 ?었어. 기름 터졌을 때 보일러도 제대로 못틀었어. 현찰이 ?어 기름을 못샀어. 주유소에서 돈없는 거 알고 외상도 안줬으니께. 보일러 못 때서 며느리가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혔어. 지금 아들은 수족관에서 일하고 농사나 짓고 집안일도 하고, 그렇게 살어. 보상이나 빨리 해줘야는디. 삼성은 돈 많은 회사 아녀?”
거대자본 삼성은 일상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우리 삶을 지배한다. 삼성이 생산한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를 조종하는 지배자가 된 것이다. 갤럭시 노트로 여가를 즐기고 집에 가면 스마트TV, 지펠 냉장고와 버블샷 세탁기가 생활의 편리와 즐거움을 준다. 삼성이 정해준 매뉴얼대로 사는 기능인이 돼버렸다.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지적했다. 내 운명을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사회,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사회, 즉 지극히 위험한 '재벌이 지배하는 사회'가 현대사회다. 재벌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들은 서민들의 골목상권까지 침범하며 중소기업은 물론 자영업자까지 몰락시키고 있다. 더불어 사법, 행정, 언론, 정치 등 국가 중추 대부분에 대한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오죽하면 재벌개혁을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도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갔다”며 재벌들에 백기를 들었을까. 이렇게 무차별적인 경제독식으로 축재(蓄財)에 혈안이 된 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은 '언감생심'인지도 모른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유류피해에 대한 삼성측의 책임이 언급됐다. 그러나 삼성은 사고 발생 후 지금까지 사고발생 원인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해 한다.
이달 초 태안을 방문했을 때 그곳은 표면적으론 국립공원답게 가을햇살을 받으며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굵은 해송은 빳빳한 솔잎을 곧추세우며 바닷가 모래언덕에서 위엄을 자랑했다. 구름포 해변의 몽돌은 반질반질하고 물빛은 비취색이었다. 태안 곳곳 해변길을 걸으며 그때의 악몽을 떠올렸지만 쉽지 않았다. 풍광이 너무 아름다웠다. 서풍에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는 드넓은 백사장에 연신 회반죽을 바르고 기름진 황토밭에선 무 배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어민들의 트라우마는 쉽게 씻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내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문득 열무를 다듬으며 중얼거리던 의항리 할머니가 생각난다. “삼성도 힘들겨. 삼성에 딸린 식구들이 월매나 많어. 삼성이 잘돼야 국민들이 잘되지. 후손들도 잘되구.” 이 순박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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