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살구쟁이 민간인 희생자 유해 추가 발굴단(단장 충북대 김도태 교수)은 이날 오전 11시 현장에서 유해 발굴 설명회를 개최했다.
발굴단에 따르면 한국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 1950년 7월 9일께 공주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등 민간인 400여 명이 이곳에서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희생됐다. 이들 가운데 317구는 지난 2009년 발굴됐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나머지 유해는 발굴됐으나 수습하지 못한 상태였다. 때문에 4년씩이나 차디찬 흙 속에서 방치되다 최근 충남도가 수습 예산을 확보, 이날에서야 빛을 봤다.
▲ 23일 공주시 상왕동 산 29-19번지 속칭 왕촌 살구쟁이 골짜기에서 발굴단원이 유해에 묻은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고 있다. 이곳에서는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9일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처형된 것으로 보이는 민간인 유해 61구가 발굴됐다.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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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주 책임조사원은 “사람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양쪽에서 총을 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구덩이 안에서 탄피가 발견되는 등 확인사살한 정황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구덩이 내에서 M1 카빈 소총 탄피 등 50여 점도 발견됐다. 발굴된 유해는 성인 남성들이나 어금니 발치 상태 등으로 미뤄 20세 미만의 희생자도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온전한 유해가 없어 신원 추정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박 책임조사원은 “지표면과 유해 사이의 거리가 불과 30~50㎝에 불과해 대부분 뼈가 삭아 없어졌다”며 “유해보존 상태가 매우 나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철을 한 치아도 출토됐다. 박 책임조사원은 “당시 치아에 보철한 경우는 드물었다”면서 “유가족들의 증언이 있다면 생자를 특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기대했다. 이와 관련 곽정근 유족회장은 “2009년에 유해 발굴이 중단되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추모공원을 조성해 작은 위령비라도 세워 희생자들을 위로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희생자가 더 매장돼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지역주민들은 “당시 트럭 17대가 30~40명씩 사람들을 태우고 왔다”면서 “희생자들 중에 여성들은 따로 묻혀 있었다”고 말했다. 트럭 당 30명으로 계산해도 500여 명이 넘는다는 얘기다. 여성 희생자들의 경우, 미발굴된 만큼 추가 희생자가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박 책임조사원도 “미발굴 유해가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특히, 여성 희생자 매장지가 존재했다는 구체적 증언이 있는 만큼 추가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발굴된 유해는 오는 27일까지 수습된 뒤 충북대 추모관에 봉안될 예정이다.
강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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