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안의 심각성으로 봐서 이제 그 이유나 캐묻고 원론적인 대책을 반짝 주문하는 선을 뛰어넘을 단계인 듯하다. 숫자로 봐도 2008년 이후 이공계 이외 분야인 의·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 떠나는 학생이 무려 496명이다. 11.43%에 해당한다면 논란거리를 넘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때가 됐다.
이 같은 현상은 중·고교에서 이공계 대학과 산업현장을 잇는 인력 수급 경로에도 적신호를 켜놓았다. 처음엔 의료계나 법조계가 아닌 과학기술의 선두에 서려고 입학한 학생들 아니던가. 물론 일부는 고교 시절 미완에 그친 의대 진학의 꿈을 위해 갈아타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직업선택의 자유 범주에 묶어 어물어물 대처할 일이 아니다. 이공계 인력 양성 정책 전반을 다시 짜야 할 중대 사안이다.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 나타난 KAIST 역대 최저 등록률 또한 극심한 이공계 기피의 단면이다. 정책적인 전략에 따라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공학 인재 유출은 과학도로서 미래 안정성과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다. 최근 과학고 출신의 KAIST 진학률 감소도 이공계 기피와 한 덩어리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민만 하지 말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했지만,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마저 잘 안 보인다. 다른 분야 집중 현상에 대해 의과학이나 생활과학 등 이공계 과학기술 범주라는 논리에 숨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KAIST 출신의 비이공계 진학은 학문적 연계성이나 학제간 연구 아닌 이공계 이탈의 지표일 뿐이다. 좀 멀게는 외환위기 이후 커진 이공계 기피가 전이된 것이고 보면 대학을 탓하기 전에 정부 차원의 관리 부재가 부른 국가적 손실이다. 장학금 낭비가 본질은 아니다. 사회 전반의 기초과학과 이공계 기피 현상의 큰 틀에서 풀어야 풀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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