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병은 학생들이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때 김치를 담아가지고 다니는데 가장 좋은 용기였다. 마땅한 도시락 반찬이 없었을 때 가장 좋은 것이 김치였다. 책가방에 도시락과 커피병에 가득 담은 김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김치는 아무리 마른 김치만 담는다 해도 발효되는 과정에서 김치국물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국물이 있는 김치를 담아 갖고 다니기에는 커피병 만한 것이 없었다. 커피병은 다른 유리병들과 달리 병주둥이도 넓고 단단하여 잘 깨지지 않아서 잃어버리지 않는 한 오래 쓸 수 있었다. 지금은 흔한 커피병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귀했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맛있는 김치를 싸주기 위해 커피병을 구하러 다니곤 하였다. 이 커피병은 도시락 반찬을 담는 것 뿐만아니라 부엌에서 여러가지 양념을 보관하는데도 그만한 것이 없었다.
커피병에 담아가지고 다니던 도시락 반찬인 김치가 가방속에서 발효되거나 옆으로 기울어져서 김치국물이 흘러나와 시큼한 냄새가 교실안에 퍼지면 서로들 자기 것이 아니라고 왁자지껄하기도 하였다. 그 보다도 교과서와 공책을 적셔서 난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가방안에 고인 김치국물을 떨어내거나 젖은 책과 공책을 이리저리 흔들거나 펼쳐서 햇볕에 말리던 기억 또한 새롭다.
특히 시골에서는 커피가 귀해서 커피가 약처럼 여겨졌던 우스갯소리도 있다. 커피를 타면 마치 한약 달인 물과 비슷하고 맛까지도 써서 서양에서 들어 온 보약처럼 생각하여 잘 보관 했다가 몸이 안 좋으면 꺼내서 먹곤 하였다고 한다. 버려지는 커피병, 한때는 귀한 생활용품이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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