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변호사 |
그러나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우두머리가 구성원에게 벌을 주거나 강제적인 명령을 한다고 하여 이것이 곧바로 법의 집행으로 볼 수 없는 것이며 여기에 일반성, 지속성, 공정성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그 사회 내에서 일정한 형식이 갖추어질 때에 비로소 법이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통제방법은 비형식적이고 관습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합법적이라 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강제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라면 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세계 내에 존재하는 많은 사회가 최근까지도 이러한 관습적인 형태로서의 법에 의해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의미 있게 다가오는 한 사회의 예를 들겠다. 아프리카의 잠비아에 있는 로지(Lozi)족의 이야기다. 사실 이 부족사회는 강력한 정치체계나 사법기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재판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 여기에서도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오늘날의 조정과 같이 마을 지도자에 의한 해결을 시도한다.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을 때에 부족장과 장로들로 구성된 부족회의에 나가 해결을 요구하게 되는데 오늘날의 재판과는 약간 다르지만 의미있는 재판제도라고 여겨지는 제도가 있었다. 즉 다툼이 생긴 이들은 각각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장로회에 나가게 되는데 이 자리에서 부족장이나 장로들은 문제된 분쟁에 대한 이야기만을 듣고 바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주장에 대하여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은 채 계속하여 잠자코 듣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분쟁내용만이 아니라 상대방이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주장이 올바르다고 하게 되는데 때로 이러한 변론으로 인하여 며칠씩이나 재판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재판관들은 당사자의 분쟁내용만 듣고 선입견 없이 그에 따른 공정하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로지부족의 경우에는 부족장이나 장로들은 당사자로부터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들어서 이들에 대하여 충분하게 알고 난 이후에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들은 당사자에 대하여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좋은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재판의 방법은 로지사회의 성격에 아주 적합한 방법이었는데 소규모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사회여서 대부분이 친족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개인 상호간에도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래 촌장은 정치적 권위뿐 아니라 종교적 권위자이며 토지경작권과 연못이나 강물에서 고기잡이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로지부족은 어떤 사람이 그 마을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 마을에 먼저 들어와 사는 사람과 친족관계가 있어야 했고 또한 마을 내의 경제활동이 역시 촌장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마을 내의 주민들은 촌장의 통제 하에 마을공동체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계속)
(법무법인 저스티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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