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청도 마찬가지로 잊고 사는지 오래되었다. 상청은 궤연( 筵)이라고도 하는데 돌아가신 분의 신주나 혼백을 모시는 곳이다. 상청은 지방에 따라 차리는 방식이 다르지만, 대개의 경우 마루의 한곳이나 작은 빈방에 차린다. 지방에 따라서는 마당에 상막(喪幕)을 따로 만들고 빈소(殯所)라 하기도 한다. 상청은 왜 만드는 것일까? 삼년상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요즈음은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비교적 생소한 말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삼년상을 치렀다. 삼년상은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님의 품에서 삼년은 지나야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있어서 부모님이 지극정성으로 품에 안고 다니면서 길러준 삼년에 대한 보답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최소한 삼년동안은 혼백을 위로해 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초상을 치르면서 묘소를 단장하고 나서 혼백을 모시고 와 상청에 안치했다. 삼년뒤 탈상을 할 때까지 아침 저녁으로 평소와 똑같이 진지상을 올리고 나서야 가족들도 밥을 먹었다. 특히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은 삭망(朔望)이라 하여 온가족이 절을 하고 곡을 하기도 하였다.
요즈음은 초상을 치르고 삼우제를 지낸 뒤 곧 바로 탈상을 하거나 49제 정도로 끝내지만 삼년은 아니어도 100일 탈상이나 1년 탈상을 했다. 삼년 탈상을 할 때는 초상을 치루고 일년 뒤에 소상(小喪)을 치루고 2년 뒤에 대상(大喪)을 치르면서 탈상을 했다. 소상과 대상 때도 초상 때와 마찬가지로 문상을 하고 부조를 했다. 추석이나 설 명절에도 방문객들은 반드시 상청에 절을 하곤 하였다. 문상객들에게는 초상 때와 마찬가지로 접대를 잘 했다. 여러 사람들이 찾는 상청이었기 때문에 단아하면서도 격의있게 마련했다. 흰 천으로 장막을 치고 길게 드리워진 천에 솜을 두어 만든 흰꽃모습의 장식을 하기도 했다. 요즈음은 찾아보기도 힘들고 용어도 생소하지만 상청은 지극한 효심의 표상이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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