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호 대전교육감 |
노나라에 형벌로 한쪽 발이 잘린 왕태라는 불구자가 있었다. 그는 덕망이 매우 높아 그를 따라 배우는 이가 공자의 제자만큼 많았다고 한다. 상계는 왕태가 스스로 수양하여 마음속으로 본심을 터득했을 뿐인데, 왜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드는 것이냐고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사람이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말고 멈춰 있는 물을 거울로 삼아야 하니, 오직 멈춰 있어야 모든 것을 멈춰 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人莫鑑於流水而鑑於止水唯止能止衆止)”
공자의 말은 '지수(止水)', 즉 정지되어 가라앉은 물만이 비출 수 있듯이 왕태는 사람들을 일부러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상심(常心)을 얻은 자는 사물을 흔들림 없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멈춰 있는 물이 고전(古典)이 아닐까 한다. 감어지수의 마음을 갖게 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독서를 통한 자성과 묵상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지만 마음의 양식을 먹기 위해선 인색하다. 독서는 지금 당장의 효과를 발휘하지 않지만 우리 미래의 자산이다. 즉각적인 열매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은 행위다.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과거를 회상케 해서, 꼭 있을 것만 같아서, 감동스러워서, 새로워서 읽는다.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의 나를 버리고 주인공과 하나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독서는 살아가는 삶에서 쉼표이다. 일상이 정지되고 상상의 공간이 펼쳐진다. 놀라운 것은, 책을 읽고 나면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게 된다. 그래서 독서는 쉼표이고 여행이다. 책을 읽는 마음에는 자신만의 꿈과 이상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간다. 생명과 우주의 섭리를 알아내어 발견의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 책읽기의 가치를 깨닫고 스스로 읽어 나아갈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요즘 우리 학생들이 스마트폰에서만 그들의 영혼을 속삭이려 하고 자신을 성찰하려 한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으며, 우리 교육은 그들의 위한 독서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학교교육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지만 그 중의 하나를 말한다면, 학생 스스로 하기 어려운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처음은 강제적 힘이 작용하지만, 그 마지막은 자발성을 촉진하는, 마치 어린 새가 어미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푸른 하늘을 박차고 오르는 힘을 기르듯이.
독서는 지금 이곳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디딤돌이다. 꿈꿀 권리를 외치지 않는 자가 책을 읽을 리 없다. 자신을 바꾸고자 책을 읽는다. 애벌레에서 탈피해 나비가 되고 싶어 책을 읽는다.
산에 올라 능선을 바라보라. 내가 오른 산이 저절로 높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저 아래 낮은 것에서 시작해서 다른 산줄기를 손잡고 다시 높아지면서 이제 이 자리까지 이른 것이다. 이 높이는 잠시 낮아졌다 저 멀리 보이는 곳으로 이어져 더 높은 것에 이르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 스스로 이룰 수 있는 성취가 얼마나 있겠는가.
앞 세대가 이룬 빛나는 학문적 성취를 배우고 익혀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 삶의 능선을 만들고, 때로는 겸손하여 낮아졌다 다른 산줄기와 함께 높아지면서 살아갈 때 비로소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리고 보이는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 세월의 담금질을 이겨내고 여전히 빛나는 정신의 결정체로 남아 있는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전문학의 결정체로 감어지수의 마음을 얻는 가을이 되길 소망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