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연 변호사 |
조선 후기 내내 집권계층은 남인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서인이었다. 그들 중에서도 노론이었다. 그들의 지역적 기반은 주로 경기와 충청지역이었다.
조선 후기 300년 동안의 만년 야당이었던 남인은 영남지역이 그들의 기반이었다. 오늘날 집권계층의 지역적 기반은 경상도 지역이라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최근 30여년에 불과하다. 앞서 조선 후기 300년 동안의 경상도는 만년 야당의 설움을 받던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최소한 정서적 우월감은 갖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특정지역을 비하하는 누리꾼의 악성 글귀들이 인터넷에 창궐하기에 하는 얘기다. 어쨌든 지난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합병되자마자 일제는 합병에 공이 있는 76명의 조선인에게 원래의 약속대로 귀족의 작위를 수여하고 거액의 은사금을 지급했다.
가장 고위직인'후작'은 7명이었는데, 이완용을 제외하면 모두 황족이었다. 황실 피붙이들이 알장서서 나라를 팔아먹은 댓가로 일제의 최고 귀족이 된 것이다.
그런데 유심히 볼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자작 이상(34명)에서 황족들을 뺀 28명 중에 27명이 노론이었다. 말단 남작까지 총 76명을 분석하면, 황족 6명과 북인 2명,소론 6명을 제외하면 62명이 모두 노론이었다. 숙종 이래로 명분을 중시하고 충(忠)·효(孝)·예(禮)·지(智)를 목숨처럼 여긴다면서 윤휴와 박세당 등 정적을 사문난적(斯文賊)으로 몰아세우고, 천주교 신도들 수만명을 황천길로 보냈던 노론 사대부들이 사실상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의 주역이었던 것이다.
또 을사오적(乙巳五賊) 가운데 4명도 노론이었다. 이들은 어떤 명목으로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에 찬성하였을까. 바로 '현실론'이다. 대한제국이 스스로 독립을 지킬 힘이 없으니 우선 일본에 나라를 의탁했다가 때가 되면 독립하는 것이 서구 열강에 의해 망국되는 것보다 낫다는 현실론으로 스스로를 위안시켰다. 그같은 현실론으로 자기들이 모셨던 군주인 고종과 순종을 겁박하기까지 했다.
그 패륜과 망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현실론이 전시작전권과 관련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현재 우리 국군의 전시작전권은 미군이 가지고 있다. '자주독립'이라는 명분과 신장된 국력에 걸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오는 2015년에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기로 미국과 합의한 지 오래됐다. 환수시기가 임박하면서 현 정부와 군부에서 그 시기를 다시 연기하자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논거도 역시 '현실론'이다. 북이 핵실험을 하는 등 주변 현실이 바뀌었으니 전작권을 연기해 우리의 국력을 신장시킨 다음에 천천히 가지고 오자는 것이 이들 주장의 핵심요론이다.이런 주장을 다른 집단도 아닌 군부에서 하는 것이 더욱 더 황당하다. 내 군대를 내가 지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존심도 상하지 않는가 보다. 우리는 그리 약한 나라가 아니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다. 이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100년 전의 비통한 망국의 주역들이 주장하였던 그'현실론'이 떠올라 씁쓸하다.
상황은 다르다. 하지만, 현실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존심보다 편안함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너무 과소평가하며 쓸데없이'현실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주의 길을 걸으면서 안보도 튼튼히 하는 그 길은 정녕 찾을 수 없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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