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인근 도로에 대형 화물트럭들이 줄지어 불법 주차돼 있어 안전사고 등이 우려되고 있다. 손인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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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한 차고지 증명제 등으로 대형차량 불법주차 문제가 심각한데도,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고 있지 않아 시민들이 위협받고 있다. 대전시 도로 곳곳이 대형차량 불법주차로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안전사고 위험은 물론 소음과 악취 등으로 시민들의 불만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대형차량 소유자들은 단속만 하며 대책 마련에 미온적인 정부와 지자체를 탓하고 있다. 시민은 물론 차량소유자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는 대형차량 불법주차에 대한 시급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대전 곳곳 대형차량 불법주차로 몸살=지난 8월 21일 대전시 대덕구 대전4산업단지 내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 부주의가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밝혀졌지만 길가에 불법주차된 25t 화물차로 인해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대형차량 불법주차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대전시 다수의 도로에는 밤낮을 불구하고 대형차량의 불법주차가 만연히 이뤄지고 있다. 시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아 단속을 실시하고 있지만, 인력부족 등으로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실제 대덕구 대전 3ㆍ4산업단지 인근 아파트 지역 도로의 경우 약 2㎞ 넘는 구간에 화물트럭과 버스 등 대형차량이 줄지어 주차돼 있는 것이 자주 목격된다.
동구 낭월동 주변 도로 역시 화물트럭과 건설기계 등 20여대의 영업용 대형차량 차고지로 전락돼 있었다. 심지어 중구 태평동 한 어린이보호구역에도 대형버스가 5~6대 줄지어 주차돼 있었다.
주민 이서진(가명ㆍ48)씨는 “불법주차된 대형차량 때문에 도로가 일방통행로나 다름없게 됐다”며 “시야확보가 되지 않아 행인들이나 아이들의 안전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주민 김민수(가명ㆍ53)씨는 “밤에 인근도로에 주차된 화물차 소음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또 대형차에서 기름이 흘러나오거나 매연, 악취 등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그런데도 주민센터나 구청에서 단속을 자주 안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1.5t 이상 영업용 화물차는 차고지 이외 장소에 0시부터 4시사이 1시간 이상 주차할 경우 5t이하는 10만원ㆍ5t이상은 20만원의 과징금 또는 운행정지 4일이 부과된다. 버스는 10만원내지 20만원의 과징금 또는 영업정지를, 건설기계는 주기장 위반으로 5만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유명무실한 차고지 증명제=대형차량의 불법주차를 방지하고자 차량 등록 시 차고지 증명을 꼭 해야한다. 그러나 일부 차량 소유주들의 허위 등록과 차고지 부족 등으로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대전시는 현행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는 1.5t 이상의 화물차량의 경우 차고지를 반드시 확보해 이와 관련된 증빙서류를 제출해야만 차량 등록 허가를 하고 있다. 또 2.5t 이상의 자가용 화물차량이나 버스, 건설기계의 경우에도 자치단체에게 차고지 설치 확인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등록을 허가하는 지자체는 인력부족 등으로 실제 차고지 이용이 가능한지 등을 꼼꼼히 확인하고 허가를 내주지 못하고 있다. 또 실제 차량이 허가 후 차고지를 잘 이용하고 있는지 등 사후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일부 대형차량 소유주들은 허술한 등록절차를 악용해 차고지를 허위로 신고한 채 버젓이 자신들 집 앞에 불법주차를 일삼고 있는 실정이다. 땅값이 비싼 도심보다는 인근 외곽지역에 저렴한 곳에 땅을 임대해 차고지로 신고하고 있다.
대형화물차 운전자 김형철(가명ㆍ46)씨는 “대전시 인근 옥천이나 청원, 금산 등 외곽지역에 저렴한 공터를 차고지로 신고하고 차량을 운행하는 소유주들이 많다”며 “현실적으로 집과 거리가 상당한데 누가 거기에 차를 주차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 타 지역에 영업소나 사업소가 있어 그곳에 차고지 신고를 한 채 대전에서 활동하는 차량도 많다.
대형화물차 운전자 한승민(가명ㆍ52)씨는 “대전에서 운영중인 차량 중 상당수가 외지에서 등록을 받은 차량으로 알고 있다”며 “법대로라면 외지 등록 차량은 대전에 주차할 수 없는데 어디에 주차를 하는지는 뻔한거 아니냐”고 말했다.
5개 구청 담당자들은 밤샘 불법주차 단속 적발 차량 중 다수가 타 지역 차량이라고 밝혔다.
한 구청 담당자는 “민원이 신고돼 현장에 나가보면 실제 대전 차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30대 정도를 단속하면 그 중 대전 차량은 4~5대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형화물차 등록 차량만 8만대… 공영차고지는 단 한 곳=대형차량의 불법주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속만이 아닌 공영차고지 조성 등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화물차량 운전자들은 차고지가 있지만 전국적으로 활동하다보면 차량을 부득이 차고지에 주차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형화물차 운전자 유진산(가명ㆍ41)씨는 “불법주차로 20만원 범칙금을 내면 며칠 일한 돈이 한번에 사라지는 꼴”이라며 “운송을 하다 차량 주차를 위해 밤늦게 차고지에 올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 했다.
대형화물차 운전자들은 자신들도 불법주차로 인해 시민들에게 안좋은 인식을 갖게 됐으며, 과도한 과태료와 도난 등으로 많은 경제적 손해를 입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나 지자체는 시민들은 물론 차량소유주들도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에도, 차고지 등록제를 근거로 들며 공유차고지 조성 등 대안 마련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지난해 대전시가 공표한 주차장현황 자료에 의하면 2012년 12월에 화물차를 포함 총 59만4786대로 확보된 주차면수가 52만3492로 88%의 주차장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화물차 등 대형차량 주차에 대한 대책은 상당히 미흡하다. 대전시에 따르면 2013년 4월 대형화물차 등록대수는 총 8만4076대에 이른다. 하지만 화물공영차고지는 남대전물류단지 내 1곳에 불과하다.
대전시 관계자는 “현재 화물연대에서 불법주차 해결 등을 이유로 공영차고지 조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차량 등록 시 차고지 증명을 엄연히 하고 있어 말이 안되는 주장”이라며 “일반주차장에 비해 많은 면적이 필요한 만큼 조성비가 만만치 않게 든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대형차량 주차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화물차량 소유주들의 의식인 것 같다”고 밝혔다.
대전시는 2021년까지 화물차 공영차고지 조성 계획을 세워났다. 대전시를 5개 권역으로 나눠 총 1635면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범규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도시교통담당)은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사업 특성으로 인해 차고지 등록은 실효성에서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며 “공영차고지 조성 등에 보다 실질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명규 한밭대 교수(도시공학과)는 “정부와 지자체가 그동안 승용차 위주의 주차정책을 펼치다 보니 대형차량에 대해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국토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법규를 재정ㆍ정비하고, 실효성 있는 행정적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문 기자 ubot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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