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집 공주정명학교 교사 |
장애학생을 지도한지 어느새 십 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장애학생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특수교육. 하지만, 이 길에서 나는 교사가 아닌 하나의 작은 지체로 오히려 우리 학생들을 통해 진한 감동과 행복을 얻는다.
특수학교 교사로 부임한 올해, 첫 수업부터 나는 큰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네 명의 학생 중 나와 의사소통이 되는 학생은 단 한 명. 그것도 정상적인 의사소통이라기보다는 부정확하게 짧은 말을 따라하는 정도였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 식은땀을 흘리며 고민만 하다가 하루를 보냈다. 학생들을 다 보낸 후 그동안 학생들의 생활에 대한 기록이 담긴 상담 자료를 천천히 읽어보던 중, '선택적 함묵증'이란 단어 하나가 눈에 확 띄었다. 유난히 눈이 크고 곱상하게 생긴 아이. 하지만 숨소리 외에 발화는커녕 발성조차 하지 않는 이 아이가 원래는 말을 할 수 있는 친구였구나. 이 아이는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게 된 후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2년이 흘러 이제는 선택적 함묵증이 그 아이의 새로운 꼬리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매일 그 아이를 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수업시간에도 일정시간을 할애하여 눈을 맞추며 입 모양을 따라하게 하는 등의 말하기 훈련을 하였고, 그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칭찬해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변하였다. 말을 하지 않을 뿐 고개 끄덕임, 입 모양 등으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게 되었다.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과학선생님이 너무나 기뻐하며 그 아이가 말을 한다고 하였다. 난 말없이 그 아이를 품에 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소나무', 과학시간에 무엇을 배웠냐는 질문에 내게 한 첫 마디가, 아니 학교에서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한 말이 소나무였다. 나는 눈물이 나오려 하였다. 이 아이가 꼭 말할 수 있게 하리라는 다짐을 하였지만, 그동안 이러한 기대와 목표들이 숱하게 꺾였었기에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렇게 나약해진 나에게 그 아이는 기적처럼 다가와 희망과 힘을 전해 주었다.
우리 학교에는 항상 웃음꽃이 가득하다. 이런 웃음은 서로를 돕는 아름다운 봉사 정신에서 시작된다. 학생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도와준다.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이 교실에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나보다 어려운 친구를 위해 우유를 가져다주고 책가방도 들어준다. 이제는 우리 학교의 자랑이 된 힐링봉사단. 이들은 매주 목요일에 모여 분리수거를 하기도 하고, 인근 공공시설에 찾아가 땡볕에 휴지를 줍기도 하며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선다. 또한 양로원에 찾아가 힘이 없으신 어르신을 돕기도 하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다양한 봉사를 하기도 한다. 시키지 않아도 서로 손을 잡고 끌어주는 아이들.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봉사하는 아이들. 우리 학교는 이러한 학생들의 작은 움직임으로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싹트고 있다.
사람의 눈과 기준으로 볼 때는 한 없이 작고 부족한 아이들. 하지만, 조물주가 볼 때 소위 정상적이라 하는 사람들과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어쩌면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더 높은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우리에게 희망과 사랑 그리고 감동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