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태주 시인 공주문화원장 |
벌써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왔다.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다. 이 사람은 오기만 하면 눈물 바람이다. 자기 아버지 얘기 듣다가 울고 자기 아버지 얘기 하다가 울고… 아, 시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시인에게 이런 딸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고 부러운 일인가!
딸에게 말하고 사위에게 이른다. 우리 돌아간 시인을 쉽게 잊지 않기로 하자. 그들에게는 아버지이고 장인이고 나에겐 동료시인이다. 사람은 떠났지만 쉽게 잊지 않는 것은 뒷사람들의 몫이고 또 미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주기 행사도 하고, 2주기 행사도 하고, 유고시집도 내드리고, 또 돌아간 시인 이름으로 문학상도 만들어 여봐란 듯 버젓하게 세상 시인들 불러 잔치도 해드리자.
어찌하여 돈 들여, 노력을 들여가며 문학상을 만드는가? 세상에 없는 시인을 다시 불러내어 숨 쉬게 하고 그 이름에 위에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죽어도 죽지 않는 목숨이고 시는 더더욱 죽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이런 것을 시인들의 유족들이 알아야 하는 건데 번번이 그러지 못해 아쉽고 속상할 때가 있다.
시인과 나는 젊은 시절 조금은 불목했던 사이다. 엇비슷한 나이에다가 등단 시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요, 사는 고장이 이웃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게 다 객기였다. 겨우 객기를 씻고 나이 들어 화해하고 좋아졌다. 그렇게 우리가 정신 차리고 철이 들자 한 편 사람이 먼저 세상을 뜬 것이다. 너무나 짧았던 화해의 날들. 우리는 이렇게 어리석고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 앞에서도 시인의 딸은 고분고분하고 다만 소중한 옛이야기를 공부하는 아이처럼 골똘하고 열심이다. 오직 아버지의 일이라는 것 하나로만 그런다. 그녀를 앞에 두고 나는 잠시 나의 딸을 떠올려본다. 나의 뜻을 따라 문학을 전공하고 문학평론가 되어 글 쓰는 사람이 된 나의 딸. 내가 돌아간 뒤 나의 딸도 이러이 아쉬워하고 애통해 할 것인가.
어느새 나는 저쪽을 내 딸처럼 생각하고 저쪽은 나를 자기 아버지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서로가 알게 된다. 안타깝지만 아름다운 시간. 오늘이 세 번째다. 계룡산 너머 대전에서 시인의 딸이 나를 찾아왔다. 자기 아버지를 찾아오듯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시인이 살아있을 때 지어드린 두 편의 시를 다시 꺼내어 읽어본다.
강아지풀 따서/ 머리에 꽂고/ 쫄랑쫄랑/ 길 떠난 소녀// 강아지풀 꺾어/ 콧수염 하고/ 쫄랑쫄랑/ 따라간 소년// 먼저 간 이도/ 보이지 않고/ 따라간 이도 이제는/ 보이지 않아// 다만 남겨진/ 발자욱 자욱마다/ 눈물처럼/ 빗물이 고여// 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놀고/ 더러는 시가/ 되기도 한다.
―「강아지풀 따서― 홍희표 시인·1」 전문
계룡산 너머 마티재 너머/ 홍 교수 외로운가 보다/ 가끔은 나 형, 더듬는 음성으로/ 전화를 한다// 계룡산 너머 마티재 너머/ 나도 덩달아 쓸쓸한가 보다/ 가끔은 홍 형, 굼뜬 목소리로/ 전화를 건다// 이렇게 우리 외로워지고/ 쓸쓸해지기 위해/ 나이 든 사람이 되었나 보다/ 나이 듦이 새삼/ 후회스럽지 않아서 좋다. ―「계룡산 너머― 홍희표 시인·2」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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