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한남대 총장 |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놓거나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가 없다. 소유한 손은 반드시 상처를 받으나 텅 빈 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그동안 내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아 주었는지 생각해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어둠이 몰고 오는 조용함의 위압감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공허한 침묵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고 오만과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들을 묶어버린다. 어차피 인생길은 빈손으로 왔다가 또 빈손으로 가는 것(空手來 空手去)인데, 알렉산더 대왕도 죽은 뒤 관(棺)옆으로 구멍을 내어 빈손을 내놓게 함으로써 갖고 가는 것이 없음을 보여주었다는데 무엇을 욕심내고 무엇을 더 움켜쥐려고 하겠는가? 욕심과 오만을 버리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내 손을 잡아줄 리 없고 용서와 배려를 모르는 한 어느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 수 없다. 얼마만큼 비우고 덜어내야 내 손이 빈손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교정자나 비판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사람은 누구를 대하든 나쁘게 보고 자신은 자랑거리와 교만으로 배가 부르다. 그래서 자신도 남으로부터 비난과 원망을 듣게 돼있다.
아름다운 면을 보려하고 그 사람의 진가를 찾으려 노력해야한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감동하고 부러워하며 칭찬할 수 있는 담백한 마음과 착한 인품을 가져야 한다. 남의 좋은 점만을 찾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을 닮아가게 된다. 남의 좋은 점을 말하면 자신도 언젠가 좋은 말을 듣게 된다. 맑고 깨끗하고 빈 마음을 가지고 남은 날들을 살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내 맘도 함께 담백해짐을 느낄 수 있다. 좋은 말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마음에 행복과 감사가 항상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떠나는 한 분을 예로 들어보겠다. 한의학계의 원로 류근철 박사(82)가 KAIST에 578억원을 기부했다. 류박사는 서울 잠실에 있는 부인 명의의 아파트 한 채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양성에 써 달라”며 KAIST에 기증했다. 그가 기부한 액수는 대학이 수령한 기부금 역사상 최고액이라 한다. 단순히 액수만을 따진다면 그의 기부액수는 국내대학중 기부금실적이 가장 많다는 고려대나 연세대가 지난해 거둔 기부금 총액보다 많은 것이다. 류박사는 '전자침술기', '추간판 및 관절 교정용 운동기구' 등을 개발해 국내·외 특허를 여러 개 취득하고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모스크바 국립공과대 종신교수가 되었다. 578억이나 되는 막대한 기금을 기부했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그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살아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류박사는 스크루지 같은 자린고비의 삶을 살아왔다. 찌는 듯 한 무더위에도 그가 숙소와 사무실을 겸하여 쓰는 아파트에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다. 이발소에 가서도 머리만 깎고 면도는 집에 와서 한다. 못 쓰는 스키는 책꽂이로, 고물쇠판과 나무로는 책상을 만들고, 남이 쓰다버린 털조끼는 방석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만원에 4개를 주는 넥타이를 시장에서 구입하여 매고 다닌다. 그는 평생 통장에 돈을 넣을 줄만 알았지 뺄 줄을 몰랐다.
이렇게 해서 모은 돈 578억원을 내어 놓으면서 그는 “이것은 내 돈이 아니라 잠시 내가 관리했던 돈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야 이 말이 진실인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든 않든 간에 주인의 재산과 물건을 관리하는 청지기에 지나지 않는다.(정충영교수의 <남산편지> 중에서) 관리권을 갖고 있으면서 소유권을 갖고 있는 양 착각하는 데에서 모든 불행과 교만과 범죄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빈손'의식은 매우 중요한 자기인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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