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영국제음악당 전경. |
하지만 통영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을 배출해냈고, 청마 유치환, 꽃의 시인 김춘수, 한국시조학의 아버지 초정 김상옥, 토지 소설가 박경리, 한국의 피카소 전혁림 등 수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해낸 예향이다. 덕분에 통영에서는 '길가에 서 있는 장승 조차도 시 한수는 거뜬히 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현재의 음악의 도시 통영이라는 위치는 시민들에 의해 사랑받은 윤이상으로부터 출발했다.
▲민(民)으로부터 시작된 인물 마케팅=작은 항구도시에서 윤이상이라는 작곡가를 통한 인물 마케팅의 성과는 눈부시다.
수산물이 주업인 지역에서 윤이상의 현대음악과 클래식은 어렵고 따분한 음악이 틀림없었다.
처음에는 괴리감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14년전 윤이상 사망직후 지역의 문화재단에서는 학교의 교가 작곡을 가장 많이한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교가부르기 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던 것이 윤이상 가곡의밤, 현대 음악제를 거쳐 현재는 국제음악제로 명성을 새로이 했다.
시민들이 다가설 수 있도록 시민 주도의 사업들을 진행해왔다. 덕분에 초창기 외지관객과 시민 관객 비율이 7대3이었던 것이 현재는 5대5로 지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상태다.
2002년부터 시작한 통영국제음악회(TIMF· Tongyeong international Music Fou ndation)는 작곡가 윤이상이 없었다면 현재의 명성이 불가능했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통영국제음악회는 전체 객석 점유율이 92%에 육박한다. 13개의 공식 공연중 6개 공연이 전석 매진됐고, 전국에서 통영 국제음악회를 관람하기 위한 클래식 마니아들이 땅끝 통영을 찾는다. 전세계에서 주목을 받으며 통영 국제음악회를 찾는 이유도 윤이상이라는 인물에서 비롯된다.
통영프린지 페스티벌도 지역의 명물이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밴드와 아카펠라, 국악, 크로스 오버 등 다채로운 장르의 공연은 물론이고 다양한 연령의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는 열린 무대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모델로 했으며, 2002년 첫해 통영에서 축제가 열렸을때 통영시를 비롯해 부산과 서부경남 일원의 아마추어 음악인 36개팀 약 200여명이 참가했다. 통영에 대한 무한 애향심에서 출발한 프린지 페스티벌이 올해는 무려 161개팀, 2000여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성대한 규모를 갖추게 됐다.
하지만 지역민들의 뜻을 모은 재단법인 통영국제음악제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명칭 변경을 신청했고, 2008년 국제음악콩크루세계연맹은 이를 승인했다. 윤이상 음악콩쿠르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름 콩쿠르이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등과 같이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다. 현재 전세계 국제 콩쿠르 가운데 20개만 병역 특례를 주고 있다. 이 가운데 윤이상 국제음악 콩쿠르도 포함돼 있다. 윤이상 콩쿠르에서 수상하면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병역특례 대상자가 나온 적은 없었다.
TIMF아카데미는 통영을 아시아 전체의 클래식 허브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국과 아시아의 재능있는 음악 인재들을 선발해 우수한 국내외 강사진의 지도하에 다양한 커리큘럼을 수행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2005년 통영에서 윤이상의 1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독일의 세계적인 현대음악 연주단체인 앙상블 모데른과 함께 시작했다. 그동안 통영은 물론, 태국 방콕, 프랑스 파리 등에서 다양한 분야의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있다.
▲소프트 웨어를 바탕으로 하는 하드웨어=각종 윤이상 관련 소프트 웨어 외에도 통영은 이들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윤이상 기념공원과 통영국제음악당 등 하드웨어를 강화시켰다. 통상 타 지자체들이 하드웨어를 설치한 이후에 소프트웨어를 채워넣기에 급급한 모습과는 상반된다.
통영시는 80여억원을 투입해 윤이상 기념공원을 만들었다. 그의 생가터가 있던 통영시 도천동 일대에 건립했으며, 윤이상 관련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각종 공연을 할 수 있는 공연장과 세미나가 가능한 메모리홀, 야외행사장 등을 갖추고 윤이상을 기리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지난 7월에는 520억원을 들여 통영국제음악당을 준공했으며, 내년 3월 정식 개관을 앞두고 있다. 윤이상 음악의 전용 공연장이 될 통영국제음악당은 1300석의 대형 공연장과 콘서트홀, 다목적홀 등을 갖추고 있다. 통영 앞바다가 훤히 바라다보이는 풍경은 국제음악당의 명물이기도 하다.
TIMF 이용민 사무국장은 “통영국제음악제는 민,관협력과 시민들이 만들어냈다. 윤이상이라는 인물은 도시 이미지 변화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며 “1차 산업도시인 수산도시가 예술가의 힘으로 아시아의 음악 허브라는 명성을 갖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통영시는 2016년 세계 10대 음악도시가 되기위해 '유네스코 창의도시'가입을 추진중이다.
이영민 통영시 문화산업담당은 “창의도시로 가입하게 되면 음악재단은 세계 여러나라와 네트워크를 맺고 정보교환을 할 수 있으며 통영의 도시 브랜드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inywong@
●민간문화단체 '통영예술의 향기'
유치환 흉상·김춘수 꽃 시비 건립 앞장
시민동참 예술사랑 '첨병' 역할
통영에는 '예술의 향기'라는 민간 문화단체가 있다. 이들은 시민문화 운동을 벌였던 '꽃과 의미를 그리는 사람들(약칭 꽃과의미)'과 '청마를 지키는 사람들(청지사)'이 통합해 두배의 힘을 모은 민간문화단체다.
김춘수 타계 3주년을 맞아 선생의 시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직한 '꽃과의미'는 400여명의 회원들이 순수 성금으로 꽃 시비를 통영시내 한 가운데 세우는 저력을 발휘한 단체다.
청지사는 한국현대시의 대명사 유치환의 명예를 친일 의혹에서 지키고 추모제를 하기 위해 2004년 조직된 민간단체다. 이들은 유치환 탄생 100년을 맞아 5000여통의 편지를 보냈던 중앙동 우체국 앞에 시민1200명의 모금을 통해 청마 흉상을 건립했다.
이들 단체가 협력한 예술의 향기는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유치환, 김춘수 등의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시민을 위한 문학강연회, 각종 문화산업 후원 등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고향 통영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꽃신의 소설가 김용익을 발굴했다. 김용익의 묘소 찾기는 물론, 문학세계 조명, 통영문학제 포함, 김용익 상 제정 등을 이뤄냈다. 나아가 김용익 생가 발굴과 기념관 자료 발굴 등 다양한 문화발굴에 나서고 있다.
시민들이 동참하는 예술 사랑이 지금의 통영을 만들었다.
●윤이상은?
'동·서양음악 결합' 업적
심청 등 150여 작품 작곡
끝내 고향땅 못밟고 떠나
통영여고·부산사범학교 교사를 역임하고 1956년 프랑스로 가 파리국립음악원에서 수학했다. 그는 1959년 독일에서 열린 다름슈타트음악제 때 쇤베르크의 12음계 기법에 한국의 정악(正樂) 색채를 담은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 유럽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윤이상은 1967년 이른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돼 누명을 쓰고 한국으로 강제 납치됐다. 2년간의 옥고를 치러야만 했으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지휘자 카라얀 등 세계음악계의 구명운동을 힘입어 풀려났다.
그는 독일로 추방당했고 1971년 독일로 귀화했다.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축하 오페라에서의 《심청》을 비롯, 옥중에서 작곡한 《나비의 꿈》(196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광주여 영원하라》(1981), 북한국립교향악단이 초연한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7) 등 15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이후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한채 눈을 감았다.
'서양현대음악 기법을 통한 동아시아적 이미지의 표현' 또는 '한국음악의 연주기법과 서양악기의 결합'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세계 음악사에 업적을 남긴 작곡가다.
※이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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