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무겁고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다니면서 사진 찍는 일은 이제 전문영역으로 변해가고 있다. 필름카메라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데, 이제는 디지털 사진기마저도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필름카메라가 널리 쓰이기 전에는 사진찍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요즈음은 여권이나 증명사진, 대형가족사진 등 규격화된 사진들이 필요할 때나 디지털이나 스마트폰의 사진인화가 필요할 때 사진전문점을 찾는다. 하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어주는 사진관이 있었다.
시골에서는 면소재지와 같은 번화한(?) 곳에서나 사진관을 만날 수 있었다. 친구들과 모처럼 사진을 찍으려면 서로 약속하여 사진관을 찾아가야 찍을 수 있었다. 백일, 돌, 졸업사진 등 기념사진도 반드시 사진관을 찾아가야만 찍을 수 있었다. 결혼식이나 회갑, 칠순, 팔순잔치 등 기념사진을 찍어야 할 때는 사진관의 전문사진사를 불러서 사진을 찍곤 하였다.
이때의 사진기는 지금과 사뭇 다른 사진기였다. 커다란 박스형 사진기였다. 커다란 박스형 사진기를 세 개의 긴 다리가 있는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사진사가 검은 천을 모자처럼 뒤집어 쓰고 조리개를 조절하여 사진을 찍곤 하였다. 사진기 플래쉬는 지금처럼 간단하게 건전지를 넣어 쓰거나 사진기 자체에 부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발화기 막대가 달린 넓은 판으로 만들어 집게처럼 생긴 곳에 타면서 빛을 내는 화학물질인 마그네슘 가루를 넣고 한순간 불태워서 쓰는 사진기 플래쉬가 있었다. 모두 함께 사진을 찍을 때 이 후레쉬가 퍽 하면서 빛을 내는 순간 연기는 구름처럼 솟아 흩어졌다. 이 플래쉬 터지는 소리가 매우 컸기 때문에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으라는 뜻에서 하나~ 둘~ 셋 하면서 사진사가 찍기는 했지만 깜짝깜짝 놀라면서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하였다. 여러 관광지에도 사진을 찍어주는 전문 사진사들이 있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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