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
이 중국인은 1988년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9단에 올랐으며, 한국 생활 1년이 채 안 된 2000년 초 당시 한국 바둑의 삼두마차인 유창혁, 이창호, 조훈현을 무릎 꿇리고 국수 타이틀을 쟁취한다. 본격 기전에서 여성이 우승한 것이 처음인 데다 국수(國手)라는 이름의 상징성 때문에 충격이 컸다. 4년 뒤 남녀 프로 9단들만 참가한 맥심배 타이틀도 획득한다. 여성 기전의 대부분이 루이의 품안으로 들어간 것은 불문가지다.
이에 앞서 그녀가 1989년부터 6년 간 현대 바둑의 본거지인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일본기원은 루이로 하여금 바둑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한다. 실력이 월등한 루이가 일본 여성 바둑계를 석권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상당수 여성 기사들도 반대했다. 그런 지경의 그녀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기원 프로기사 차민수를 만나고, 그의 주선으로 마침내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다.
제자 이창호와 함께 한국 바둑을 이끌던 조훈현이 적극 지지했으며, 여성 기사들도 손뼉을 쳤다. 1988년 단기필마로 참가한 바둑 올림픽인 제 1회 잉창치배에서 일본과 중국의 고수들을 모조리 뉜 조훈현은 어릴적 일본 유학 경험을 떠올리고, 한국 바둑 특히 여성 바둑에 끼칠 루이의 정(正)의 효과를 예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는 물론 일본에도 한참 뒤져 있던 한국 여성 바둑계가 대대적인 환영을 보인 것은 조금 의외였다.
'루이 아줌마'에게 지기만 하던 한국 여성 바둑은 이내 일본을 추월하였으며, 지금은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한때 중국인 우칭위안, 대만인 린하이펑, 한국인 조훈현, 조치훈 등을 품으면서 현대 바둑을 만개시킨 일본은 루이를 거부한 것처럼 대부분의 일본 기전에 외국인 참가를 불허하는 등 점점 폐쇄적으로 바뀐다. 여성 바둑은 말할 것도 없이 급기야 일본 바둑 전체가 변방으로 밀려나고 만다.
조훈현의 잉창치배 우승으로 일약 세계 정상으로 우뚝 선 한국이 최근 중국에 따라잡히는 형국이다. 왜일까? 바둑 종주국의 체면을 잃은 채 한동안 공한증(恐韓症)에 시달리던 중국은 1999년 영국 프리미어 축구리그를 닮은 바둑리그를 창설하고, 여기에 자국 기사들의 일부 불평에도 아랑곳없이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 등 한국의 고수들을 비싼 용병으로 부른다. 이러한 통 큰 개방이 지금의 중국 바둑을 일군 분명한 힘들 중 하나다.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인재(Talent), 기술(Technology), 관용(Tolerance)을 지수화하여 그 합을 창조성 지수라 불렀다. 이 중 관용에는 게이 지수, 인종 지수, 보헤미안 지수가 있는데, 게이 지수와 인종 지수는 극단적 개성과 차이를 용인하는 정도를, 보헤미안 지수는 문화예술 관련 종사자의 인구 비율을 나타낸다. 이러한 창조성 지수가 높은 도시가 바로 창조도시(Creative City)이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한다는 것이다.
곧 테미창작센터가 문을 연다.
그런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전 작가들에게 제공하는 화실이나 아틀리에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좁은데 누구에게 주겠나, 외지인에게 내줄 데가 어디 있겠나, 하면서 말이다. 레지던시는 타지나 해외 작가들과 함께 창작·교류 활동을 하는 거점 공간이다. 이를 통해 한 지역의 작가가 전국구화·국제화한다. 레지던시는 단순한 화실도 아틀리에도 아닌, 창조를 위한 예술적 관용의 공간이다.
일본 바둑의 몰락과 중국 바둑의 도약에서 우리는, 관용이란 창조를 실현하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임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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