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면책'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원심 확정 선고가 아니어서 다시 유·무죄를 다툴 수 있게는 됐다. 그룹 총수의 경영일선 복귀 가능성이 한 가닥 열려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이슈로 받아들일 만한 판결이다. 비유하자면 적신호가 노란등으로 바뀌었다. 이에 벼랑 끝에 선 김 회장의 구명운동까지 벌인 지역 경제계와 지역민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충청권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데다 지역경제에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영공백 장기화를 우려하며 지역민이 바랐던 선처 호소는 순수했다고 본다. 충청권을 포함해 전국에는 여러 사업장과 협력업체가 있다. 재계 10위 그룹 총수의 장기 경영공백이 국가경기 회복 차원에서 이로울 리 없다. 비상경영 체제로는 특히 이라크 신도시 건설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사업에 거시적 안목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오너 리스크는 또한 공격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신성장 사업에서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한다.
회사를 살리고 더 큰 피해를 막으려는 '경영상 판단'은 반드시 면책해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배임과 경영상의 판단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한국적 현실을 방조하자는 건 더욱 아니다. 대기업 총수에 대한 집행유예 공식을 깬 엄벌 기조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법의 단호함을 앞세운 상징적 판결보다 오너십 공백을 없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판단이 선다.
이것이 한 개인이나 기업에 대한 선처가 아님은 “국익 차원에서 참 안타까운 일”이라는 김현명 주 이라크 대사의 발언에서도 절실히 묻어난다. 파기환송 부분에 대한 유·무죄 향배는 원심법원 몫으로 남았다. 후속 투자에 대한 경영 판단, 추가 수주와 해외정부 협력관계, 연관산업 선점, 중소기업 동반 진출 등 막대한 국익도 참작 사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판결의 변화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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