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기자]할머니 품에 안긴듯한 정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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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문화재]5.비룡동 줄골 장승

  • 승인 2013-09-26 14:42
  • 신문게재 2013-09-27 12면
  • 한소민 객원기자한소민 객원기자
▲ 비룡동 줄골 할머니장승. 미소짓듯 편안한 모습이 일상에 지친, 팍팍한 가슴을 보듬어주는듯 하다.
▲ 비룡동 줄골 할머니장승. 미소짓듯 편안한 모습이 일상에 지친, 팍팍한 가슴을 보듬어주는듯 하다.
처음 대전시 동구 비룡동 줄골 장승을 만난건 봄 꽃 화사하던 어느 날이었다. 용이 하늘로 올라간 들판인 비룡동의 줄골. 깊고 아득한 계곡 사이의 물이 힘차게 줄줄 내려가 '줄골' 이라 명명했다는 역동적인 이름의 그 곳은, 그때 고요한 한낮이었다. 햇살 쏟아지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환한 적막 속에 할아버지 할머니 장승이 있었다. 도로 양 쪽에 자리한 두 장승 사이에 서 있으니 봄 햇살처럼 환한 기운이 가슴 속에 들어찼다. 계단을 올라가면 이백년 동안 돌처럼 굳어 있던 몸을 부르르 떨고 나와 금방이라도 그 작은 체구로 나를 반겨 안아 줄 것 같은 두 돌장승들을 보며 문득 나는 이 시를 떠올리게 됐다.

'할머니 집 고샅길에 / 민들레꽃 피어 있고요 / 할머니 집 들어서면/ 오냐온냐 내 새끼 많이 컸구나/ 내가 내가 어여쁜 꽃이 됩니다/' -김용택 '할머니 집에 가는 길' 중에서

할머니 댁에 온 듯 할머니 품에 안긴 듯한 정겨움이 거기 있었다. 그 뒤로도 내내 줄골 장승을 만날 때 마다 편안함과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을의 수호신도 되고 이정표도 되었던 장승은 마을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람 모습을 하고 서서, 사람들이 꿈꾸던 많은 것들을 지켜 주었다. 처음 이곳에 이 장승들을 세워 놓은 사람들은 무엇을 소망했을까? 대전 땅 곳곳에, 우리 땅 구석구석에 각각의 신비한 전설로 자리하고 있는 수없이 많은 장승들은 어떤 사연들로 거기 자리하게 되었을까? 마을 어귀나 들머리에 장승을 세우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랐던 우리의 오래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 영원한 꿈들이 몇 세대를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전해지는걸, 그래서 지금도 가슴 벅차게 이 돌장승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는 계실까? 도로 확장으로 뒤로 옮겨져 조금 더 떨어져서 할아버지를 지켜보는 할머니 장승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된다.

줄골 할아버지 할머니 장승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늘 평화롭다. 두 분의 얼굴에 담긴 미소에 큰 힘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년의 추억으로 가는 길이며, 무거운 마음의 짐 다 내리게 되는 평안함이며, 말없이 전해지는 한없이 따스한 위로다.

한소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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