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옛날에 라디오는 첨단과학기술의 상징이었다. 라디오가 각 가정에 퍼져 나아가면서 라디오를 팔고 사거나 고장난 것을 고쳐주는 라디오방이 있었다. 요즈음으로 치면 전자회사의 서비스센터 역할을 했다. 지금의 서비스센터는 번호표를 뽑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거나 맡겨 놓았다가 찾아오면 된다. 수리요원들과 고객들은 분리된 공간에서 소통의 여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라디오방은 달랐다. 큰 고장이 나서 부품을 다른 곳에서 구해오거나 구하지 못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라디오를 고치는 전 과정을 라디오방 아저씨와 함께 하면서 여러 가지 라디오에 대한 지식을 알아 갈 수 있었다. 라디오 부속품에서부터 부속품의 역할, 고장났을 때 간단한 조치방법 등을 익힐 수 있었다. 수리하려고 뜯어놓은 라디오 속을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일이었다. 수리가 불가능한 라디오는 지금처럼 통째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하나하나 떼어내서 다른 라디오를 고치는데 재활용했다. 그만큼 라디오 부품 하나하나가 귀했던 시절이었다.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변하면서 트랜지스터 하면 곧 라디오를 일컫는 것이 되었다. 특히 도시락보다 작은 휴대용 라디오를 트랜지스터라 부르곤 했다. 당시만 해도 라디오를 들고 다니면서 듣는다는 것 자체도 신기한 일이었다. 라디오를 수리하는데 쓰는 연장들도 우리가 보통 집에서 쓰는 연장들과 다른 것이었다. 특히 전선을 붙이는데 쓰는 납과 납땜 인두는 신비롭기만 했다. 박스형으로 된 납작한 건전지를 휴대용라디오 뒤에 고무줄로 묶어 가지고 다니면서 라디오를 들었던 기억 또한 새롭다. 망가진 라디오 스피커에서 뜯어낸 힘좋은 자석은 땅바닥의 쇳가루를 모으는 최첨단 놀이감이었다. 이러한 라디오방도 읍면 소재지에 한 두군데 밖에 없어서 고장난 라디오를 고치거나 건전지를 바꾸기 위해 라디오방을 찾아 가던 장면 또한 가까운 옛날의 즐거운 추억이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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