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인 대전심리상담연구소장 |
필자가 미혼이었던 20대의 나이에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자녀생산이나 경제적인 협력, 노후보험 등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데 30년이 흐른 지금, 현재 사회를 들여다보면 비록 학문적인 고찰은 아닐지라도 결혼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올 4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은 모두 11만4300여 건이었고,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를 나타내는 조(粗)이혼율은 2.3건을 기록했다. 다행히 조이혼율은 지난 2003년 3.4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임으로써 이혼부부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결혼 가정의 심각한 부분이 나타난다. 이혼부부의 평균 혼인 지속기간은 13.7년이었으며, 20년 이상 혼인을 지속하다 이혼하는 부부가 26.4%로 꾸준히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30년 이상 혼인을 지속하다 이혼하는 이른바 '황혼이혼'은 10년 전에 비해 2.4배가 늘어남으로써 이혼율과는 반대추세를 보이고 있다. 왜일까?
이혼사유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혼사유 중에서 '성격차이'는 50%를 넘고 있다. 즉, '참다 참다 더 이상은 못 참아서 이제라도 이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황혼이혼을 결심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 성격 차이가 없는 관계가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부부가 성격이 비슷해서 이혼 안 하고 살고 있을까?
필자는 이문열이 제시한 결혼제도의 목적 중에서 '인생에서 오는 비참함과 고독을 위로해 줄 상설 상담역을 얻는 것'이라는 설명에 대해 깊이 통감한다. 사실 이문열이 제시한 성, 자녀, 경제, 노후문제 등은 특정한 어느 부부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미혼자에게나 기혼자에게나 모두에게 발생하는 인생 여정의 수고들이다. 부부는 각자의 인생 여정에서 발생하는 그 수고들을 맞이할 준비를 함께하고, 함께 겪으며, 함께 정리하는 단위다. 그 과정에서 힘들 때 서로 격려하고, 실패했을 때는 위로하며, 성공했을 때는 서로 칭찬해 주는 관계여야 한다.
'성격차이'는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비난함으로써 쌓여 온 미움들이 점차 부부간의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마침내는 정서적으로 이별하게 되어 서로 이해하거나 수용할 의지조차도 남지 않은 상태에 대한 다른 표현일 뿐이다. 상담현장에서 부부상담을 하게 될 때, 젊은 부부들은 상담 성공률이 매우 높다. 그들은 아직 미움이 덜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있다. 그런데 중년부부들은 거의 비자발적으로 상담현장에 오며(최소한 한쪽은 비자발적인 경우가 많다), 최소한 한쪽은 이미 이해와 수용을 포기한 상태다. 그들의 상담 성공률이 낮다기보다는 상담이 거의 진행되지 않거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애석하게도 많이 늦었다.
필자의 견해로 이혼사유 중에 '성격차이'는 결혼식과 혼인신고를 하면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무지와 게으름의 소치다. 인생살이 중에서 결혼 전과 결혼 후 중에서 어느 시기가 더 많은 일이 발생할까? 당연히 결혼 후이며 그만큼 스트레스를 더 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더 많은 준비와 공부, 그리고 훈련이 필요하다. 결국 '성격차이'에 의한 이혼은 준비도, 공부도, 훈련도 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인생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혹은 발생했을 때, 부부 서로가 상설 상담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 능력을 기르기 위한 준비, 공부, 훈련이 바로 부부상담이다. 상담현장에서 부부상담은 꽤 성공률이 높은 편이다. 왜냐하면 부부갈등이 매우 심각한 상황일지라도 사실 그것을 유발한 원인은 대체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부부들이 그 부분을 이해하게 될 때, 부부갈등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그래서 필자는 젊은 부부들에게 역설적으로 권한다. 상담이든 이혼이든 하려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빨리 시작하라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서로에 대한 미움만 남아 있게 되면 결혼실패자가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