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유성구 온천2동 주민센터에서 지역 주민들이 모여 송편을 빚으며, 안부를 묻고 외로움을 달랬다. |
독거노인이나 쪽방주민들은 찾는 이 없는 곳에서 외로이 보내야 할 추석연휴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이 때문인지 명절을 앞두고 구청과 봉사단체에서 마련한 추석 행사에 많은 이들이 참석해 외로움을 달랬다.
12일 유성구 온천2동복지만두레가 마련한 '추석맞이 3대 송편빚기'에서 조영희(82) 할머니는 송편을 3년 만에 빚어본다고 했다.
3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는 혼자서 보내는 명절에 떡이나 특별한 음식을 일절 하지 않았다. 괜히 더 쓸쓸해질까 명절이면 TV도 켜지 않는다.
평안북도가 고향인 조 씨는 남한에 피붙이라고는 딸(49)이 하나 있는데 부산에서 생활해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정도다. 그나마 유성구보건소 근처에서 사글세 10만원짜리 집도 집주인의 사정으로 조만간 비워줘야 할 처지여서 다가오는 추석이 한겨울처럼 쓸쓸하다.
기운을 차리고 고운 한복을 입은 조영희 할머니는 “먼저 간 할아범이 녹두기피 송편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나눠먹을 사람도 없어 그동안 송편을 잊고 지냈다”며 “손자뻘 되는 아이들과 송편을 빚으니 오랜만에 명절기분을 낼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이날 온천2동 주민센터에는 홀로 사는 할아버지ㆍ할머니 22명이 참가했고 북한에 고향을 둔 한 할머니는 뭉뚝한 송편을, 충남 홍산이 고향이라는 최모 할머니는 속을 푸짐히 넣은 배 볼록한 송편을, 전남도가 고향이라는 조모씨는 군만두처럼 긴 송편을 내보이며 즐겁게 웃었다.
추석 명절에 갈 곳을 잃기는 쪽방주민이나 대전역 노숙인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들은 추석을 쇠느라 자원봉사자들도 찾아오지 않아 평소보다 더 조용한 명절을 보내야 한다.
대전홈리스지원센터에서 만난 황모(52) 씨는 “고향에 가면 노부모도 계시지만, 지금은 갈 수 없다. 추석에 이곳 사람들과 함께 합동차례상에 차례를 지낼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날 쪽방상담소가 주최하고 대전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철도공사, 튼튼병원, 삼성동복지만두레 등이 후원해 풋살운동장에 마련된 '지역주민 화합 한마당'에 500여명의 주민들이 참가해 추석의 외로움을 달랬다.
노숙인을 위한 벧엘의 집 원용철 목사는 “명절에 소외계층 주민들이 더 외로움을 느껴왔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들만의 축제ㆍ놀이마당을 만들어보고자 준비한 이날 잔치가 잘 마무리돼 의미가 있었다”고 전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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