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묵]푸른 물결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강도묵]푸른 물결

[시론]강도묵 국제라이온스 대전지구 총재, 대전·충남 경영자 총협회장

  • 승인 2013-09-11 16:57
  • 신문게재 2013-09-12 21면
  • 강도묵 국제라이온스 356-B지구 총재강도묵 국제라이온스 356-B지구 총재
▲ 강도묵 국제라이온스 356-B지구 총재
▲ 강도묵 국제라이온스 356-B지구 총재
바람 같은 것들의 영향으로 수면에 높낮이가 생겨 움직이는 결을 우리는 '물결'이라 한다. 물론 적은 양의 물에서도 물결은 이나 그것이 우리의 시각으로 쉽게 감지되지 않기에 느끼지 못한다. 많은 양의 물에 이는 물결만이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다. 또 우리는 들판의 식물들이 바람 앞에 대처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푸른 물결이 흐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물결이란 어휘에는 '많음', '풍성함'이란 의미가 함유되어 있는 것 같다. 실개천을 바라보며 물결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듯이, 가뭄에 시달려서 오그라진 작물을 바라보면서 푸른 물결이란 말은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들판에는 푸른 물결이 한창이다. 아침 먼동이 트면서 푸른 물결은 얼굴을 내밀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날의 가뭄을 이겨내고 이제는 도도할 정도로 그 물결이 대단하다. 이것은 여러 차례의 단비가 내려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힘들어 하다가도 단비가 내려주면 작물들은 지난날의 서운함을 잊고 제 할일을 다 한다.

푸른 물결의 작물들이 도도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제 본분을 지키며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잎파랑이에서 필요한 태양 에너지를 부지런히 받아들이고 있는데, 바람이 찾아와 심술을 떨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들은 신이 내려주는 은혜로움에 감사하고 겸허한 자세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그 모습도 어둠이 찾아오면 정지된다. 어둠의 물결이 도래하여 세상을 덮으면 그들은 또다시 몸을 낮추고 새벽을 기다린다. 좌절하지 않고 인고의 시간을 참아낸다. 더러는 어둠 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거나 번개가 친다 해도 그들은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모두가 질긴 생명을 놓지 않고, 조용히 날이 새기를 기다린다. 머지않아 새벽이 온다는 사실을 그들은 굳게 믿기에 참아낼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순환을 말없이 지켜보며 오늘도 충실히 삶을 꾸리는 사람은 역시 농부다. 그들은 자연의 순환 앞에 요란하지 않고, 당연한 일로 차분히 받아들인다. 가뭄은 가뭄대로, 홍수는 홍수대로, 태풍은 태풍대로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은 일찍이 자연에서 배운 그들만의 삶의 철학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혹여 심한 변화가 찾아온다 해도 당황하지 않고, 그냥 덤덤히 받아들일 뿐이다. 다만 고난이 끝나면 다시 일어설 각오만 키우고 있다.

지금 들판은 온통 푸른 물결로 너울거리고 있다. 좀 지나면 누런 물결로 바뀔 것이고, 결실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 희망이 있기에 농부들은 오늘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침을 맞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어둠의 시간이 혹독하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을 뿐이다. 으레 결실을 보기 전에 태풍이 한두 번 온다는 것도 그들은 안다. 그러나 그 태풍이 온다 하여 삶에 차단기를 내리지 않는다. 조금만 할퀴고 가면 다행이고, 심한 상처를 낸다 한들 통곡하지 않고 일어설 기회를 기다린다. 물론 태풍이 없으면 좋겠으나 그러지 않더라도 낙과가 덜 되기를 그들은 신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주문할 뿐이다.

이 건실한 농부들의 삶에서 내 것으로 가져올 것이 있다. 너무 세상을 탓하기보다 주어진 현실에 충실히 임하는 그들의 자세를 익힐 일이다. 태양의 은혜로움이 있을 때 더 부지런히 일하고, 어둠이 찾아오면 다소곳이 휴식하며 아침을 기다리는 슬기. 이것은 민초들이 몸으로 알려준 삶의 지혜이다.

세상은 온통 푸른 물결이 흐르고 있다. 저 물결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이 요구되었던가. 참고 인내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복이다. 저 푸른 물결이 다치지 않고 모두 누렇게 익어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풍요로운 가을을 기대하면서 저 물결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언제나 설렌다. 매년 맞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유별나게 설레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꾸준히 노력한 것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5.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1.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2.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3.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4.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5.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