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살 주부인 김모씨는 1974년생이다. '잘 키운 딸 하나 열아들 안부럽다'며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절. 딸이라는 이유로 크게 차별받았던 기억은 없다. “여자도 남자 못지않다”던 부모님의 격려 속에 지방의 국립대에 입학했고 서클활동에 푹 빠져 남자동기들을 제치고 회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의 첫 출발선, 취업에 도전하면서 느낀 남녀차별의 벽은 높고도 단단했다. 학과에서 써주는 취업지원서는 남자 동기들에게 먼저 돌아갔고 민간기업 역시 여자보다는 남자를 더 선호했다.
고민 끝에 '성별'이 아니라 '성적'으로 승부하는 공무원시험에 도전, 합격했지만 공직에서도 남녀차별의 벽은 존재하고 있었다. 주요 업무는 남자동기들에게 먼저 돌아갔고 커피심부름 같은 잡무들은 자연스럽게 여자동기들의 몫이 됐다. “신입시절 준비실(탕비실)에서 커피잔을 닦는데 울컥 눈물이 나대요. 내가 이런 일 하려고 들어왔나?” 당시를 회상하던 김씨는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주위의 말을 들어보면 어느 회사든 여직원들의 '2피엠' 고민은 여전한 것 같다”고 말한다.
'2피엠'이란 '커피'와 '카피'(복사), '미스(Miss) 김'을 뜻한다. 커피 심부름과 복사 같은 잡무를 맡으면서 겪는 자괴감에다 '미스 김', 미혼여성을 선호하고 결혼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조직문화 속에서 결혼 후 갈등과 고민이 크다는 것이다.
김씨에게도 '미스김'일 때는 몰랐던, 난관들이 결혼 후 태풍처럼 덮쳐왔다. 일과 가사를 병행하며 '슈퍼우먼'처럼 모두 다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등 수많은 갈등 끝에 육아휴직을 택하게 됐다. 그 때도 고민은 적지 않았다.
육아휴직으로 동료에게 업무부담을 준다는 미안함, 휴직동안 업무적으로 뒤처지게 된다는 낭패감 등이 컸고 휴직 뒤 복귀했을 때는 자신이 ‘한직’으로 밀려났다는 느낌, 남자동기들과의 승진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20대 때는 열심히 일하면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결혼 뒤 임신, 육아를 거치면서 ‘유리천장’을 실감하게 됐다”는 김씨는 성차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여자와 남자를 똑같이 대해달라는 것은 아니다”며 “남녀간의 성적 ‘다름’을 인정하고 성별에 의한 부당한 ‘성차별’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업무를 부여하고 평가할 때는 남녀차이가 아니라 능력차이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돼야겠지만 여성들에게는 그녀들의 상황을 감안, 그만큼의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김씨가 내놓은 나름의 처방전이었다.
또한 경력단절 여성들의 재취업과 관련, 김씨는“맞벌이를 원하는 남편을 가까스로 설득해서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다시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들이 사회에 재진출할 수 있도록, 사회ㆍ제도적으로 적극 지원해주는 것도 여성들이 다시 시작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씨는 “초등생인 외동딸이 커서도 성차별의 벽 앞에서 고민하지는 않을지 걱정될 때가 있다”며 “부디‘성차별’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세상, 성적 차별이 아니라 성적 다름이 인정되고 존중받는 세상에서 딸이 자신의 꿈을 활짝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의화 기자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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