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준 중부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
자부심과 뿌듯함이 느껴진다.
투수인 류현진을 특히 돋보이게 하는 데는 미국프로야구의 갖가지 통계도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 WHIP(출루허용률)은 매회 주자를 주루에 내보내는 정도를 말하는데, 특급 투수들의 경우 1.0 내외로 평가된다. 류현진도 1.22 정도니 상당히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선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단연 상대팀 득점권에서의 관리 능력이다. 즉, 상대팀의 득점기회는 곧 우리팀의 위기로서 위기를 잘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26게임에 등판하며 13승 5패에 방어율 3.02, 피안타율 0.252, 피홈런 13개를 허용한 상황에서, 득점권 피안타율은 0.214, 피홈런은 단 1개뿐이라는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또 소속된 리그에서 3번째로 많은 병살타(23개)를 유도하고 있으며, 실점을 목전에 둔 주자 3루의 위기상황에서 피안타율은 0.186에 불과하다. 더욱이 홈런이 없다는 것은 그의 가치를 더욱 빛내주고 있다.
신나는 야구 얘기는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는 절대 유쾌하지 못한 얘깃거리로 넘어가야겠다. 우선 며칠 전 일어났던 대구열차 충돌사고 얘기다. 인재다, 시스템부재다 하면서도 사고마다 늘 원인과 결과, 대처에 대해 똑같은 말들이 되풀이된다. 문제는 인명사고가 거의 없었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게 아닌데도, 그나마 '불행 중 다행' 또는 '덜 충격적인' 사고로 여겨지며 은근슬쩍 무디게 넘기게 될까하는 걱정이다. 우리는 이번 사고를 통해 기관사와 상황실 간 소통문제, 승객대피 과정 등 사고 전후 안전관리에 대한 총체적 부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앞서 지난 여름 다섯 명의 고등학생들이 태안의 사설 해병대캠프 사고로 인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안전에 관한 인식에서부터 행정관리체계 등 역시나 심각한 수준의 위기 예방과 관리의 부실함을 맛보았던 기억이 엊그제다.
그런데 이 일련의 사건사고들은 크기나 규모만 다를 뿐, 우리 일상에서 전혀 생소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소소한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수시로 발생한다. 위기와 위험에 직간접적으로, 개인적이든 사회적으로든 언제나 봉착하게 된다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생활 속 안전을 위협하는 각종 위기에 대한 예방과 대처 등 종합적인 생활안전과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되짚어보게 된다.
위기의 개념은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상대적이다. 주관적으로 적용될 수 있어서 일률적으로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위험한 고비(시기)'로서 안정적이지 못하고 위협에 처하는 상황을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위기의 범위도 어떤 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선 전통적 측면에서 위기는 국가안보에서부터 자연재난, 국가기반체계의 미비로 일어나는 재난 등을 의미한다. 반면에 오늘날에는 개인적 가치나 사회적 체계 속에서 처할 수 있는 각종 사회심리적 재난들까지도 포함된다.
즉, 사회문제로서의 빈곤과 노동 문제, 아동 및 여성 성폭력, 노인우울·자살 등 위협의 대상도, 위기발생의 원인도 전사회적이고 다양하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협하는 상황이 위기로 여겨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실생활 전 영역에서 물리적, 정신적 측면을 모두 포함하는 위기에 대한 안전욕구와 민감성도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생활안전과 위기문제의 상호작용에 따른 실효적인 관리방안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전국가적 측면의 요구도 발전하게 됐다. 그 요구가 바로 위기를 예방하거나 안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전략적 접근으로서의 '위기관리'다.
현대사회는 늘 실점을 앞에 둔 '주자 만루'의 위기 상황이다. 반복되는 위기관리의 부재만 지적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개인·사회적 위기의식의 고취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전사회구조적 측면에서의 예방·대비·대응·복구의 과정과 내용을 포함한 효과적인 '통합위기관리시스템'을 확고히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류현진처럼 병살타를 잘 유도하면 좋겠지만, 우선 한 주루씩 잡아나가야 한다. 그렇게 우리사회의 실점을 줄여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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