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의 일관성보다 신빙성이 더 중요=아산에 사는 이모(28)씨는 지난해 8월 어느 날 자신의 여자친구 집에 갔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없고 여자친구의 친구 A(여ㆍ31)씨가 자고 있었다. A씨를 강간하려 했지만, 반항 때문에 실패했다. 놀란 A씨가 친구에게 강간당할 뻔했다는 말을 하자, 이씨는 고함을 지르며 A씨를 폭행했다. 이씨는 준강간미수와 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상해죄만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씨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범행 시각쯤인 오후 2시 57분과 3시 1분, 3시 13분 등 세 차례나 A씨가 외부인과 휴대전화 통화를 한 사실을 들었다. 강간당하려는 상황에서 전화를 걸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대화 내용도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적인 내용으로 보이고, 범죄를 당한 직후의 태도도 아니며, 범행 당시 자신과 이씨의 행동 등에 대한 진술이 번복됐다는 점 등을 들어 무죄로 봤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준강간미수죄까지 적용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우선 피해자가 특정한 범죄 시간인 오후 3시는 대략적인 시간인데다, 실제 통화내역과 당시 상황의 불일치는 기억의 혼선으로 볼 수 있을 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주요한 자료로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범행 사실의 주요 부분이 아닌 통화 경위와 관련한 세부적인 기억이 다소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진술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범행 다음날 A씨가 이씨를 고소해 돈을 노린 정황이 보이지 않는 반면, 피고인은 범행 부인을 넘어 허위사실을 적극 내세워 무고와 위증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위협 없어도 반항 못하게 하면 강제추행=같은 재판부는 또 강제추행죄로 기소된 함모(31)씨에 대한 원심(징역 2년)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함씨의 죄는 두 가지였다.
우선 등교하던 B(17)양을 강제추행했다. 또 밤 11시가 넘은 시각, C(19)씨가 원룸 엘리베이터에 타자, 문이 닫히지 못하게 한 후 강제추행한 혐의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피해자 C씨에 대한 범행을 무죄로 봤다.
함씨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지 않은 채 피해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소리를 지르자 도망쳤던 점, 음란행위를 보도록 위협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시선을 돌리면 볼 수 없었던 점 등을 근거로 위력을 행사하지 않아 추행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현장감 있는 판단을 내놨다.
우선, 늦은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탄 아직 어린 19세 여대생을 정면으로 보며 문이 닫히지 않도록 한 것 자체가 상당한 공포감을 줄 수 있다고 봤다.
또 엘리베이터는 다른 탈출구가 없는 폐쇄적 공간이고, 원룸 전용 엘리베이터다 보니 공간이 좁고, 피고인과의 거리도 가까워 피해자가 벗어나기 불가능했던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탈출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몹시 두려워하게 한 건 피해자의 반항을 곤란하게 하는 협박 내지 유사한 정도의 유형력 행사에 해당해 강제추행죄의 성립요건”이라고 판시했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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