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
대전의 이러한 특징들은 그러나, 성장 중심의 근대화와 개발 위주의 도시화에도 일정 부분 기인한 결과로서 현실적으로는 대전만의 절대적인 이점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즉 우리나라 모든 사회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압축적 근대화와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병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전의 몇몇 조건과 환경이 비교적 낫다는 이유로 굳이 다른 지역과 차별적인 대전만의 전략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전시는 근본적인 정책 대안으로 사회적 자본 키우기를 전개하고 있다. 알다시피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공동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하는 무형의 가치이며, 신뢰, 배려, 참여, 소통, 협력, 나눔 등이 키워드다. 소외와 갈등을 치유하는 기회비용의 최소화와 도시 발전의 지속가능성을 전제할 때 이만한 전략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여기서 필자는 8월 29일부터 9월 5일까지 열리는 대전시민합창축제를 말하고자 한다. 올해로 두 번째인 시민합창축제는 대전의 77개 동 가운데 50개 동의 마을 합창단이 경연하는 방식을 취한다. 동구, 대덕구, 유성구는 각 하루씩, 참가 팀이 많은 서구, 중구는 각 이틀씩 진행되는데, 매일 우수상, 화목상, 인기상이 주어지며, 우수상을 받는 7개 합창단 중 하나가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시민 합창단의 가장 큰 자랑이다. 바쁜 시간을 겨우 쪼개 하는 연습일진대 진지하게 때로는 천진하게 방긋방긋 입을 벌리는 모습들에서는 근심도 걱정도 하나 찾을 수 없다. 함께 부르면 부를수록 평소 굳어 있던 얼굴은 아름다운 꽃송이로 펴지고, 도저히 형언 못할 행복이 넘쳐난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주는 미학적 감동이 아닌가.
여러 사람이 공공의 의사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민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표출되기 마련이다. 두루 존중 받아야 마땅한 각자의 생각도 너무 파편화하거나 첨예한 대립각을 이룬다면 정치 또는 행정이라는 배는 산으로 떼밀려만 올라간다. 아무리 독창이 소중하다 해도 다중이 어울려 사는 세상에는 합창의 정신이 꼭 필요하다. 나의 목소리는 줄이고 남의 목소리는 잘 듣는 것이 합창의 으뜸 덕목이기 때문이다.
대전의 마을 합창은 대전의 인문지리적 특징은 물론 대전시의 사회적 자본 키우기에도 참 잘 부합한다. 아니 합창은 그 자체로 이미 사회적 자본이다. 여러 사람이 둘 이상의 성부로 나뉘어 서로 다른 선율로 화성을 이루면서 함께 부르는 합창은, 너도나도 다 잘났다는 독선적 경쟁 끝에 승자 아니면 패자로만 남는 상처투성이 우리들에게 신뢰, 배려, 참여, 소통, 협력, 나눔의 교훈을 준다.
합창은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정체성이란 동질성과 차별성의 합이다. 함께하며 하나의 소리를 이룬다는 동질성, 그 속에서 자신의 소리는 따로 있다는 차별성, 이것이 바로 합창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정체성이다. 초동급부(樵童汲婦), 우부우부(愚夫愚婦)가 합창을 통해 미학적 감동을 체험한다는 것은 그 합창을 하는 이에게도, 보고 듣는 이에게도 얼마나 느꺼운 일인가. 합창은 '사회적 자본'을 키우기 위한 가장 가깝고 힘 있는 메타포(metapho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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