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토익 900점을 받았다고 치자. 그러면 자기가 원하는 기업에 입사해서 영어를 활용할 수 있거나 혹은 국제사회에 진출할 수 있을까? 이 또한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영어실력은 국제화에 활용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국내에서 경쟁하는 동료들과의 승부를 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기업이나 국제무역을 취급하는 종합상사 등에는 해외영업도 있고 외국바이어들을 접대하기 위해 토익점수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중소, 중견기업에서까지 써먹지도 못할 영어성적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대기업 따라하기다.
그렇다면 중소, 중견기업은 왜 대기업을 따라 하는가? 필자가 듣기로는 영어점수가 높은 학생이 성실하고 능력있는 인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물론 영어성적이 우수하다는 것은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성실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성실성을 증명하는 것이 어디 이 뿐인가?
예를 들어 대학생들의 경우에는 대학 성적으로도 성실성을 증명할 수 있다. 1학년 때의 성적은 중하위권이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성적이 향상되었거나, 혹은 일정하게 상위권을 유지하는 경우 성실성을 증명할 수 있다. 반대로 영어성적은 훌륭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성적이 하향되는 경우라면 불성실한 학창생활을 보냈거나 아니면 자신의 전공을 등한시 하는 무책임한 대학생활을 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학은 영어공부를 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전공실력을 늘리고 공동체 생활을 통한 인성과 다양한 지식을 쌓기 위한 학문의 상아탑이기 때문이다.
성실성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기업에서 인재를 뽑을 때 짧은 면접이긴 하지만 이때에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스팩이나 영어점수 보다 면접과 사회성을 중요시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영어를 꼭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면 젊은 대학생들을 영어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가령 토익공부를 위해 하루 두 시간 이상 공부하고 한달에 10만원의 학원비를 지불할 경우 이 학생은 그 시간에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기회비용을 상실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독서나 자기계발(여기에 영어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에 투자하고 전공분야의 지식을 습득한다면 기회비용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더 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토익시험을 본 적은 없다. 문법은 틀리지만 해외에 나가서 영어로 소통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시험을 위한 공부(study)를 한 것이 아니라 영어가 필요하다는 동기에 의해 공부(learn)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과 필자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지만, 영어를 필요한로 하는 곳에서만, 그리고 목적이 분명한 학생들만 영어공부(study)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영어공부의 목적을 소통의 방법으로 배우면 안 될까? 이 뜨거운 여름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책이 대부분 토익책인 것을 보면서 가슴 한편에 몽우리가 있는 듯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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