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잠시 다닌적이 있다고 표현하는게 맞을까. 절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로부터 받은 '모태 크리스찬'이란 꼬리표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들은 최소 일년에 두 번 고해성사를 하는 것을 의무로 꼽는데, 보통 부활절과 성탄절을 앞두고 행해진다.
가톨릭과 기독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은근한 죄책감과 함께 떠밀려 치르게 된 '생애 첫 고해성사'는 매우 부끄러운 기억이다.
신부님이 아무리 비밀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죄'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조금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니건만 며칠을 끙끙 앓으며 고민 했었다.
결국 고해실 칸막이 앞에서 스스로와 타협을 한다. 가장 큰 무언가는 감추고, 포장된 소소한 잘못들을 고백하며 십자성호를 그었다.
마음 속 한 켠에 접어둔 허물들은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에 포함시켜 버린다.
형식적인 고해에 대한 보속을 안고 서둘러 성사실을 나오며, 진심이든 거짓이든 이 모든 것을 가려주는 칸막이에 감사했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2013년. 국정원 청문회를 보며 그날의 부끄러운 고해성사를 떠올린다.
댓글의혹 사건 등 국정원 정치개입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여부를 둘러싼 진상규명을 위한 이번 국정조사는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채 일반적 상황들을 뛰어넘는 여러 가지 파격(?)을 선보였다.
국가정보원 현직 직원들의 모습이 공개석상에서 노출될 경우 앞으로의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가림막'이 내려져 '가림막 청문회'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올려라 내려라'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여야는 결국 '반쪽공개'하는 것으로 합의 했고, 손을 비롯한 상반신 일부가 보일 정도로 오려낸 가림막 아래의 30cm의 공간은 '보일락 말락'하는 이상야릇한 장면으로 드러났다.
어떤 자리보다 진실되고 투명하게 밝혀져야 할 청문회장에서 증인들은 얼굴을 감추었고, 핵심 증인들은 선서를 거부했다.
'국정원 댓글녀'로 알려진 '김직원'은 가림막 안에서 가장 큰 무언가는 감추고 '기억하지 못하겠다'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이 적힌 자료를 넘기는 그녀는 누구와 타협을 한 것일까.
앞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선서를 거부해 청문회장을 술렁이게 했는데, 이로 인해 위증에 대한 면죄부를 받게 됐다.
선서 거부의 돌발 상황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국민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 그들의 증언을 TV로 지켜봐야하는 한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이런 비극을 국정조사라고 진행하는 국회나, 그 어떤 진실이던 이번엔 꼭 밝혀지리라 기대했던 국민이나 불쌍하기는 매한가지다.
사상 초유의 국정원 국정조사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지만 속 시원히 규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막말과 고성이 난무하는 정쟁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국조 무용론'도 나오고 있다.
20년전 그날의 고해성사실로 돌아가 본다. 만약, 진심이든 거짓이든 이 모든 것을 가려주는 '칸막이'가 없었다면 부끄럽지 않은 고해를 할 수 있었을까.
눈앞의 '가림막'이 당장은 고마울지 모르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말하지 못한 진실 또한 영원히 '가림막'안에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더운데, 속터지는 국정원 국조를 보며 극에 달한 국민들의 짜증은 누가 해소해 줄 것인지….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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