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식 대전시민아카데미 대표 |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은 1972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측근이 닉슨의 재선을 위한 선거공작의 하나로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본부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하려다 발각된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을 말한다. 워터게이트 침입사건이 벌어진 후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 밥 우드워드는 그 침입자들의 심문에 참석했다가 무언가 수상쩍은 기미를 파악하게 되고, 동료 칼 번스타인 기자와 더불어 선거를 위한 부정한 수단과 고약한 은폐의 음모를 끈질기게 파고들어 결국 백악관의 비리를 폭로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탄핵과 사임에 이르게 한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이라는 걸출한 명배우들의 젊은 시절의 명연기를 볼 수 있어 좋기도 하지만 헌법적 질서와 가치를 수호함에 있어 언론의 역할이 무엇이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언론의 사명은 어떠해야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좋은 영화다.
영화와 비슷한 일이 지금 이 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현행법을 어기고 선거 등의 정치현안에 직접 개입하여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전담반을 구성해 선거여론을 조직적으로 조작하는가 하면, 국가기밀인 정상회담 대화록을 왜곡해 선거의 한 당사자에게 누설, 선거에 이용하도록 하였다. 급기야는 그 진상규명을 회피하기 위해 관련 대화록을 왜곡 편집해 공개해버리는가 하면 직접 그 의미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왜곡된 해석을 언론에 유포하는 등 아주 드러내 놓고 불법적인 정치개입 행위를 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행위가 국정원에만 한정되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은 더 하고 있다. 경찰수뇌부가 사건을 은폐하고 일선수사진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한편 선거에 영향을 줄 의도로 허위의 수사결과 서둘러 발표하는가 하면, 검찰은 이러한 헌정문란의 당사자인 국정원장을 불구속 입건하고 실무직원은 기소유예 처분하는데 그쳤다. 법무장관은 이러한 혐의의 국정원장에게 특별범죄혐의를 면해주기 위해 지휘권발동을 검토하는 등의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심지어는 검찰에 의해 기소된 기관장과 경찰의 감부가 국회에 출석하고도 증인선서를 거부하는 등의 도저히 정상적인 법치국가라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당시 닉슨 대통령과 백안관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베트남전 종식 정국을 활용해 국민의 시선을 돌리고자 했으며 사건 자체에 대해서도 국가안보 위협 요소라고 공격했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말은 언론의 집요한 추적과 보도에 의해 하나씩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국정원 사건에 대처하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 또한 이와 유사하다. 대선 당시에는 국정원사태를 한 여직원에 대한 인권침해일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 위협 행동이라고 공세를 취했으며, 대선 후에는 NLL 대화록 공개로 물타기를 하며 청와대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을 사임에 까지 이르게 한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가 아니었다. 즉 중요한 것은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인지했느냐는 것이 아니었다. 사임 후에도 그는 줄곧 억울하다고 주장해 왔으며 그에 대한 인지여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닉슨 대통령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며 시종일관 사건에 대하여 거짓으로 대했다는 그의 태도였다.
거짓으로 잠시의 시간을 벌어 사람들의 눈을 가릴 수 있다 착각하지만, 결코 사실이나 진실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려는 자세, 역지사지의 자세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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