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이들에겐 적잖은 충격이리라. 워싱턴포스트가 어떤 신문이던가? 136년 전통에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하야시킨 저널리즘의 아이콘이다. '뉴욕타임스'와 함께 미국 언론의 양대 산맥을 구축했으나 이 신문조차 세상의 변화 앞에선 무기력할 뿐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2002년 77만여 부에서 2012년 47만여 부로 10년 사이 발행부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같은 시기 매출은 31% 감소했다. 최근 3년 연속 영업 손실을 기록하다 급기야 작년에는 사상 최대 적자라는 수모를 겪었다.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1000여 명이 넘는 편집국 인력을 640여 명으로 감축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인류 최초의 매스미디어인 종이신문은 위대한 발명품이다. 서구에 한정된 얘기이기는 하나 팸플릿·책자·신문 등의 초기 인쇄물은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면서 시민혁명의 매개체 구실을 톡톡히 했다. 인쇄술이 없었다면 정치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로 대별되는 근현대 사회는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소통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인쇄술에서 그치지 않았다. 방송매체가 등장하고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인쇄매체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스마트폰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시대에 종이신문의 영향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이런 도도한 흐름은 인력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워싱턴포스트의 매각 결정은 순리를 거역하지 않은 아름다운 퇴장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877년 민주당계 신문으로 창간되었다. 대공황 직후인 1933년 금융가인 유진 마이어가 인수해 사위인 필립 그레이엄과 함께 유력지로 발전시켰다. 우리나라의 족벌언론들은 워싱턴포스트가 그레이엄 일가 소유 신문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맞는 말이나 그레이엄 일가는 편집권과 인사에 일체 간여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70년대 초 국방부 비밀문건 보도를 둘러싸고 당시 사주였던 캐서린 그레이엄은 정부의 극심한 압력에 시달렸다. 보도를 강행할 경우 1억 달러 가치의 텔레비전 방송사 허가권과 3500만 달러어치의 주식공개가 무산될 상황이었다. 회사 법률고문들은 당연히 그레이엄에게 보도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편집국의 의견을 존중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도 온갖 압력을 받았으나 편집국에는 정확한 보도만을 당부했다.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 제보자가 누구인지조차 취재기자에게 묻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가 유력지로 성장한 배경에는 사주의 올곧은 소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은 매각 발표 뒤 엘리베이터에서 몇몇 기자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 기자가 이번 일이 나쁜 뉴스냐고 묻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결국엔 신문에 좋은 뉴스일 것”이라 답했다. 그리곤 제프 베조스에 대해 “그는 신문이 무엇을 하는지, 특히 이 신문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했고 그것을 기꺼이 옹호할 것”이라 말했다 한다. 베조스도 이에 화답하듯 성명을 통해 “워싱턴포스트의 가치는 변치 않을 것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진실을 추구할 것”이라 밝혔다.
사실 베조스가 창업한 아마존닷컴은 그저 덩치만 큰 전자상거래 업체가 아니다. 참여·개방·공유를 핵심가치로 한 '웹2.0' 기업의 선두주자이자 상위 20%가 아닌 80%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한 '롱테일' 신화의 주역이다. 단위당 이익은 적어도 다수의 제품을 팔아 서비스 플랫폼을 강화하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그레이엄 일가가 워싱턴포스트를 다름 아닌 베조스에게 판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버려야 얻는다 했던가. 그레이엄 일가는 워싱턴포스트를 매각함으로써 워싱턴포스트가 일관되게 추구한 가치를 지키려 한 것이다.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행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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