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원]29만원과 28만명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배국원]29만원과 28만명

[시사 에세이]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승인 2013-08-19 14:11
  • 신문게재 2013-08-20 20면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올여름은 더워도 너무 덥다. 폭염이 계속되다 보니 기록적인 수치가 계속 경신되고 있다. 38℃가 넘었다는 소식에 한숨이 나오더니 39℃에 육박했다는 뉴스에는 아예 한숨마저 막히는 기분이다. 여하튼 올여름엔 이래저래 기억할만한 숫자가 많은 것 같다. 최고로 길었던 장마 기간 43일이라던가, 지금까지 LA다저스 류현진이 달성한 12승 등이 올여름 우리 삶을 새롭게 채워준 숫자들이다.

그러나 이번 여름 다시 한 번 우리 국민 모두에게 쓰라린 추억을 일깨워준 숫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악명 높은 '29만원'이라는 숫자다. 그래, 올여름 '그 분'이 다시 신문에 등장하고 TV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다. 수천억에 달하는 벌금을 선고 받았지만 통장에 “29만원 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벌금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었다고 마냥 당당하던 '그 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회위원들이 벌금추징에 관한 법까지 바꾸면서 압박을 가하고, 수사당국도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일가친척을 조사하는 모습이 뭔가 이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 같은 기대를 가지게 한다. 최근 유행하는 어느 개그 프로그램 대사처럼 “29만원 밖에 없다”는 말로 전 국민을 많이 당황하게 했던 그 배짱 든든한 분도 이번에는 스스로 많이 당황한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올여름 우리를 정말 당황하게 만든 뜻밖의 숫자는 '28만명'이다. 초중고 학교에 다니지 않고 아무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학생들의 숫자가 놀랍게도 '28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대안학교, 유학, 직업학교, 소년원 등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 수도 무려 13만명이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하고도 우리나라 학령기 청소년 713만명의 4%에 달하는 28만명이 아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파악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29만원'이라는 숫자가 전국민을 비웃게 만든 코미디였다면 '28만명'이라는 숫자는 국가 전체를 우울하게 만드는 트레제디, 비극적 숫자다.

그 많은 학생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 아이, 한 학생 모두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보호와 양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체들인데, 무려 '28만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이처럼 무관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나라 군인 전체 숫자의 2분의1이 되는 인원이 증발된 셈인데 이것이야말로 미래 국가안보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지 아닌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가 “29만원 밖에 없다”면서 오히려 당당해하던 그 무모한 모습처럼 그까짓 '28만명'쯤이야 사라져도 문제없다는 집단적 무감각과 무례함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유독 폭염이 계속되는 올 여름은 특히 대학관계자들에게 힘든 시간이 되고 있다. 급변하는 교육환경과 대내외적으로 증가하는 변화압력이 전국의 모든 대학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제일 큰 압박은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대입정원이 58만명인데 2017년부터는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대입정원보다 적어지기 시작해서 10년 후에는 15만명 정도 적은 43만명이 되리라는 예상이다. 대입정원보다 고교졸업생이 15만명 적다는 말은 입학정원 1,000명 되는 대학교 150개가 신입생을 한 명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연일 쏟아지는 교육관련 통계숫자들을 맞춰보는 지방대학 관계자들은 수년 안에 닥쳐올 입학관련 쓰나미에서 살아날 방도를 구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당장 입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에 고심하고 대학의 생존을 위한 계획에 고민하다가 듣게된 '28만명' 이야기는 너무나 큰 충격이고 미안함이었다. 명색이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젊은 영혼을 위한 교육의 큰 그림은 전혀 그리지 못하고 자기 학교 정원 채우기에 급급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러운 것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우리 교육제도에서 사라져버린 어린 학생들이 무려 '28만명'이나 된다는 비극적 소식을 들으면서도 잃은 양을 찾아 나서려는 마음보다 입학정원을 먼저 신경써야 하는 내 자신이 밉고 우리의 교육현실이 한탄스럽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