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은남 경제부 기업과학팀 부장 |
독일 경제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경영인이자 작가인 롤프 도벨리는 자신의 책 『스마트한 생각』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라는 전화위복이란 말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환상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왜일까?
그는 동일본 대지진이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은 전화위복이란 말처럼 미래를 위해 과연 강해졌을까?라고 묻는다. 대지진과 허리케인이 쓸고 간 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상대적 안도감 등으로 전화위복의 환상에 사로잡힌다. 대지진과 허리케인으로 집도 잃고, 모든 것을 잃었어도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면 이렇다저렇다 할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지진과 허리케인의 위기를 경험했다고 해서 다음번에 또다시 발생할 수 있는 대지진과 허리케인에서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대지진과 허리케인의 경험을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 위험한 지역으로부터 먼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것이다.
신체 일부를 잃는 오토바이사고를 당한 사람이 '목숨을 구했다'고 안도할 것이 아니라, 당장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은 오토바이를 팔아버리는 것이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없고, 위기는 위기일 뿐'이라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일간 전력수급 비상상황을 맞았던 우리의 처지에 맞는 말이다.
35℃에 육박하는 더위 속에 모든 관공서는 냉방기 가동을 중단했다.
대부분의 사무실은 형광등을 끈 채 어둠 속에서 업무를 봤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이 전기절약에 동참해야 했다.
전기절약을 위해 7월 말 대부분 집중휴가제를 시행했던 정부출연연구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무실과 연구실 냉방기는 꺼진지 오래고, 전력 총량규제로 인해 피크타임대에는 전력사용이 많은 대형연구장비마저 가동을 중지했다. 그렇다고 연구를 중단할 수 없는 일이어서 일부 연구소 연구원들은 전기소비가 적은 새벽과 야간에 출근해 연구장비를 가동하기도 했다. 모두가 합심한 덕인지 대정전 위기인 12~14일을 무사히 넘겼다 한다.
지난14일 산업부 장관은 “지난 월요일부터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찾아왔지만, 가정·상가·기업·공공기관 등 온 국민의 노력으로 무사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유례없이 혹독한 폭염 속에서도 꿋꿋이 절전에 동참해준 국민 여러분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 말이 국민의 단결된 힘이 전력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것보다는 마치 앞으로도 국민의 고통이 더 필요로 하고, 희생해야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왜일까?
IMF를 극복했던 단합된 힘이 우리 국민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뿌듯함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사상최악의 전력난을 국민으로 힘으로 극복했다는 산업부 장관의 말과 함께 지난 5월말 터진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이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원자력발전소 3기가 잇달아 가동을 중단, 300만㎾의 공급력 순손실이 발생, 전력 대란을 부채질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성과 대책 마련 없이 무조건 아껴야 한다는 정부의 '쥐어짜기' 식 절전운동에 짜증마저 나는 것도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극심한 전력난이 여름과 겨울, 되풀이되는데도 정부는 국민의 희생과 인내만 강요하고 있는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생각이다. 원전을 제대로 건설했다면, 비리로 인해 가동이 중단되지만 않았다면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이 때문에 이번 전력수급 비상상황이라는 위기 극복이,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는 생각보다, 정부의 전력정책을 불신의 눈으로 쳐다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또다시 국민에게 쥐어짜기식 절전을 강요한다고 해서 그때에도 이번처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국민에게 고통과 희생을 강요만 하지 말고 전력수급 비상상황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인 원전부품비리를 뿌리뽑고, 재발방지를 비롯한 안정적인 전력수급 정책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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