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를 통해 지난주 중부고속도로 오창 부근에서 차량 5중 추돌사고가 있었다는 소식과 영상을 접했다. 당시 두 운전자가 추월 시비로 10여분 간 옥신각신하며 운전을 하다가 한 사람이 고속도로 1차선에서 자신의 차를 멈춰 상대방 차량을 세웠다. 위험천만하게도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시비가 벌어졌다.
무모한 시도는 곧 사고로 이어졌다.
뒤따라오던 5t 트럭이 제동을 하지 못하면서, 서 있던 차량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트럭 운전자가 사망했으며, 앞에 있던 운전자들과 승객들이 크게 부상을 당했다. 사고 영상에서는 운전자들의 무모한 감정싸움이 사고로 이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금 참았으면, 서로 양보했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는다. 하지만 분노에 휩싸이면, 우리는 종종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들을 하기도 한다. 때문에 분노조절이 필요하다. '참을 인(忍)자가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옛말이 있다. 분노와 원한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대장간의 합창'이란 곡으로 유명한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Il trovatore'에는, 비극적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중세 시대, 스페인의 한 성주에게 어린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이유없이 아프기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아이의 옆에 집시 여인이 있었던 때부터였다. 성주는 집시여인이 마녀라고 생각하며 여인을 잡아 화형에 처한다. 하루아침만에 억울하게 어머니를 잃은 집시여인의 딸은 성주의 아들을 유괴한다. 그리고 아이를 자신의 어머니가 타 죽은 불구덩이 속에 던진다.
여인이 정신을 차렸을 때 성주의 아이는 자신의 옆에 있었다. 분노에 휩싸인 여인은 성주의 아이 대신 자신의 아이를 불 속에 던져 넣은 것이다. 분노가 사람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성주의 아들을, 여인은 자신의 아들로 생각하며 정성으로 키운다. 집시 여인의 아들로 잘 자란 청년은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여인을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해 성주가 된 그의 형이었다. 둘은 서로가 형제라는 것을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형제는 사랑을 놓고 경쟁한다. 결국, 동생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긴 형은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다. 그리고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자기 동생을 죽이게 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동생을 자기 손으로 죽인 것이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오해와 분노, 사람의 마음에 품은 원한이 사람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헬레니즘 문명을 일으킨 알렉산더 대왕은 “나는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위대한 정복자였다. 하지만, 자기 마음의 분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알렉산더는 술자리에서 빚어진 언쟁으로 분노한 나머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이자, 중요한 참모였던 마케도니아의 기병대장 클레이투스에게 창을 던져 그를 죽게 하였다. 죽이고자 던진 것이 아니었다. 친구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며 후회해도 친구를 살릴 수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었다. 한 순간의 절제되지 않은 분노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만든다.
성경에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32)고 했다. 폭염이 거듭되는 여름날,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노하기를 더디하는 모습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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