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번호 끝 네 자리를 알려주면 법적 처벌을 받을까.
11개 숫자 중 네 자리밖에 안 되는 만큼,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보는 게 보통이지만 엄연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사연은 이렇다.
부여경찰서 백강지구대 소속 A 경찰은 지난해 2월 지구대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용정방앗간 사무실에서 도박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단속해 달라”는 제보자 B씨의 신고 전화다. 지구대 순찰조는 곧바로 출동해 A 경찰과 평소 알고 지내던 C씨 등 4명이 도박하는 현장을 덮쳤다. 하지만, 판돈 규모가 크지 않아 훈방 조치했다.
문제는 한 달 후쯤 발생했다. A 경찰은 부여읍 모 술집에서 만난 C씨로부터 도박신고자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구대 업무취급 인수인계부에 기재된 제보자의 전화번호 중 끝 번호 네 자리를 알려줬다. A씨 측은 “네 자리(사건 정보)만으로는 피해자를 알아볼 수 없고, 사건 정보를 다른 정보와 결합해 피해자를 알아볼 수도 없기에 사건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에 규정된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달랐다.
대전지법 논산지원(판사 강지웅)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 경찰과 A 경찰로부터 개인정보를 넘겨받은 C씨에게 각각 징역 6월, 징역 4월을 선고했다.
2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했지만, 무고 혐의까지 적용된 A 경찰에게는 80시간의 사회봉사를, C씨에겐 보호관찰과 8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했다.
우선, 휴대전화번호 끝 네 자리에 일정한 의미나 패턴을 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근거를 들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생일이나 기념일, 집전화번호는 물론, 영업용 휴대전화 등 모두 네 자리에 사용자의 정체성을 담는다는 것이다. 특히 전화번호 사용자와 일정한 인적 관계를 맺어온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이 사건의 경우도 C씨는 A 경찰로부터 받은 네 자리와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기존 통화내역을 확인해 도박신고자가 B씨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때문에 B씨가 도박자들에게 사과까지 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A 경찰은 오히려 허위진술로 B씨를 무고했다.
강지웅 판사는 “사건 정보(네 자리)는 살아있는 개인인 B씨에 관한 정보로, 피해자임을 알아볼 수 있거나, 적어도 다른 정보와 결합해 피해자임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다. 이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 제1호에 규정된 개인정보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강 판사는 “범죄신고자의 개인정보를 다른 사람도 아닌 그 범죄자에게 알려주는 건 보복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라며 “B씨가 선처를 탄원하고 34년간 경찰공무원으로 성실히 근무해온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윤희진 기자 heejiny@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