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혜진 목원대 교양교육원 교수 |
우리에게 흥보는 남같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고 서민의 고단한 삶이 공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 반전은 있다. 흥보가 부러진 제비다리를 고친 은덕을 보게 된 것이다. 박속의 은금보화는 흥보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온갖 시름을 없애주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흥보는 과연 계속 착하게 지냈을까. '흥보가'의 진짜 미덕은 그 이후부터에 있다. 흥보는 부자가 된 뒤에 형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형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동네 사람들을 배불리 먹였으며, 거지가 된 놀부를 용서하고 우애 좋게 살았던 것이다. '착하게 살자'의 대명사인 흥보는 그 후에도 쭉 착하게 살았을 것임은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다.
'흥보가'를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노동과 부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착한 흥보의 근면 성실한 노동은 그 댓가를 정당히 받지 못했다. 결국은 우연과 행운에 의해 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부자인 놀보 형이 있었지만 동생 흥보는 늘 가난했다. 나누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보가 박속에서 나온 여러 인물들에게 된통 혼이 나자 깨달은 진리는 결국 나누며 살아야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만 배부른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자본주의 이행기에 부의 분배로 인한 계층 갈등을 바라보는 관점을 시사한다. 놀보는 '악덕 자본가'를 상징하고 흥보는 '가난한 서민'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의 상황이 역전되어 결국 서민이 승리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놀보는 놀보인 채로, 흥보는 흥보인 채로 부를 나누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행복할 수 있을까?
현대에는 착하게 사는 흥보보다 어떻게든 남보다 하나를 더 가지려는 놀보가 점점 많아지는 것만 같다. 그러니 서민들은 더 살기가 어려워져 간다. 편법, 탈법, 탈세를 저지르는 부자들의 모습 역시 놀보를 떠올리게 된다. 서민, 중산층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려는 발상과 태도 역시 놀보 심보에 가깝다. 다행히 이 정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놀란 가슴을 한 번 쓸어내리게 된다.
예전에 판소리는 청중을 울리고 웃기면서 삶의 정서를 전하는 예술 양식이었다. 흥보이야기를 들으면서 청중들은 자신이 흥보가 된 처지라고 생각하며 공감했다. 그리고 쌀과 돈이 가득 든 박이 열렸을 때 마치 내가 복을 받은 것처럼 즐거운 힐링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적 해결 방식이기에 다시 팍팍한 현실로 돌아오면 늘 고단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늘 꿈은 있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을 것'이란 꿈말이다. 흥보같은 착한 사람이 부자가 많이 되어서 함께 잘 사는 지혜를 보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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