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기억… 가려진 절반을 들추다

  • 문화
  • 문화/출판

불편한 기억… 가려진 절반을 들추다

위안부의 실체 다른각도 해부 “편향 인식 바꿀때 과거사 청산” 일본군 아닌 업자가 포주역할… '적국' 여성들과는 다른대우

  • 승인 2013-08-14 13:34
  • 신문게재 2013-08-15 11면
  • 박수영 기자박수영 기자
●'제국의 위안부'-박유하 지음

▲ 저자는 위안부의 '총체적인 모습'을 담지 않은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은 실제 '위안부'일 수 없다고 말한다. 사진은 위안부 문제해결 청년기자회견에서의 소녀상 모습. 연합뉴스 DB
▲ 저자는 위안부의 '총체적인 모습'을 담지 않은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은 실제 '위안부'일 수 없다고 말한다. 사진은 위안부 문제해결 청년기자회견에서의 소녀상 모습. 연합뉴스 DB

68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출간된,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책 제국의 위안부는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제국의 위안부는 그 청산의 큰 단초로 자리매김된 위안부의 실체를 일반의 인식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해부해 눈길을 끈다.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인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일문과 교수는 위안부를 향해 고정된 민족주의적 시선이 위험하고 그 편향의 인식을 바꿀 때 오히려 과거사 청산과 동아시아 평화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일본 우익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 인권침해 범죄의 책임이 일본제국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와 가난, 가부장제, 국가주의의 복합적 산물임을 강조한다. 이 문제를 무조건 일본의 국가범죄와 배상으로 연결지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영원한 볼모로 잡아 두는 짓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와 '화해를 위해서-교과서ㆍ위안부ㆍ야스쿠니ㆍ독도'라는 책을 쓴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게이오대와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일문학을 전공했다. 한마디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이같은 저자의 문제의식은 1990년 초 한일관계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위안부 문제가 왜 20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일로로 치닫는가에서 출발한다. 한국인들은 이를 일본의 우경화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저자는 반대로 한국인들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던 문제를 키워 놨고, 이로 인해 일본 우익뿐 아니라 이 문제에 죄의식을 느끼던 일반 일본인까지 염증을 일으키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1부에서는 '위안부'를 재구성하는 '기억의 투쟁'의 분석이 책의 제1부에서는, 국가의 세력 확장에 따라 위안부의 전신 '가라유키상'이 출현하는 근대 초기에서 시작해 조선인 여성이 '위안부'가 되기까지의 정황, 위안소 생활, 태평양전쟁 종식 이후의 귀환에 이르는 '조선인 위안부'들의 총체적인 모습이 증언집을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위안부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는 작업을 통해 클로즈업되는 것은 우선 소녀와 처녀들을 위안부로 데려간 주체로서의 업자나 포주다. 일본군이 '위안부'를 필요로 한 것은 맞지만 사기 등의 불법적 수단으로 '강제로 끌고 간' 주체는 일본군이 아니라 업자였다는 사실,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강간이나 폭행, 감시, 고문, 중절 등의 주체가 포주였다는 사실이 위안부의 증언을 통해 밝혀진다.

증언에서는, 일본군과의 관계에서 조선인 위안부의 위치는 일본에는 '적국'이었던 중국인 여성이나 네덜란드 여성과는 달랐다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그렇게 다른 존재들을 똑같은 존재로 생각한 데에서 위안부 문제에 커다란 혼란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안부의 '총체적인 모습'을 담지 않은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은 실제 '위안부'일 수 없다는 사실도 치밀하게 분석된다.

제2부 이후에서는 '조선인 위안부'를 둘러싸고 어떤 새로운 '기억'의 투쟁이 펼쳐졌는지와 함께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분석과 제언이 이루어진다. 지원단체의 요구인 '입법 해결' 대신 한일 양국에 함께 제시하는 대안은, 이 문제를 도덕적 규범에 반하는 '죄'와 '법'을 위반한 '범죄'를 구별해서 묻는 것이다. 독일의 사죄도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을 진 것이었다는 지적은 시사적이다.

지은이가 제안하는 '식민지배의 기억을 온전하게 바라보는 일'은 오로지 독자의 용기와 자부심에 달려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기억의 투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그 근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그만 '현실 정치에서 놓아주고 그들의 온전한 기억을 찾아주어 국가에 이용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그 근원에 다가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또 하나의 탈식민주의적 사고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책표지의 기모노 여성이 '반쪽'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일본인의 모습을 해야 했으되 결코 일본인일 수 없었던 조선인 위안부를 상징하는 듯하다. 나아가 현대에 이르러서도 조선인 위안부들의 체험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반쪽만 전달되었다는 상황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어떻든 그렇게 각각 다른 반쪽만 보는 한 어떤 관계도 접점을 찾을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저자의 이런 도발적 주장에 수긍하기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해방 68년,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도, 제국과 냉전이 남긴 문제들을 넘어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일본만 매섭게 노려봐 온 우리 자신의 모습도 한 번쯤 거울에 비춰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박유하 지음/뿌리와이파리/328쪽/1만 8000원.

박수영 기자 sy870123@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