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마실방 쫓아다니는 맏손녀 특권인양 입에 달고 살았던 20원짜리 라면땅, 먹다 남은 막걸리로 반죽한 밀가루에 호박잎 깔고 강낭콩 흩뿌려 만든 할머니표 술빵, 어쩌다 특식으로 끓여내던 어머니의 라면국수 한 솥, 국수 가락 사이로 구불거리는 면발하나 건져 올리면 어찌나 행복했던지…. 젓가락 싸움 서슴지 않던 그 시절 얘기에 웃음 한가득. 가족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이야기 메뉴다.
추석이나 설 대목 며칠 앞두고 있었던 연례행사 '동네 돼지잡던 날'. 마당 넓던 우리집은 그 거사(?)의 중심이었다. 타닥타닥 소나무 장작 타들어가는 소리 거세질 즈음 동네사람 모여들고, 제 주인 회초리 피해 멋모르고 도망오던 암퇘지 등장하면 일의 절반은 성공. 꽥꽥~ 외마디 소리 몇 번 내지른 놈은 삽시간에 부위별로 나뉘어 이집 저집 소쿠리에 담겨졌고, 손님맞이 음식재료가 돼 있었다. 간, 창자 등 부산물 안주삼은 술판도 끝나갈 무렵, 아버지는 한풀 꺾인 장작불에 살코기 넉넉히 붙은 갈빗대 몇 개 얹으셨다. 새벽부터 거사의 일원이 돼 잠 설쳤을 동네 꼬맹이들 몫. 코끝 파고드는 숯불갈비 냄새에 머리카락 그슬리는 것 쯤 뭐그리 대수였으랴. 아궁이앞 추억은 그렇게 익어갔다.
얼마전 영국 런던 요리축제에 '인공 소고기'로 만든 햄버거가 등장했다. 소의 근육조직 줄기세포를 배양해 얻은 쌀알크기 조직 수천개를 합쳐 만든 햄버거 패티. 구글 공동창업자가 자금을 대고 네덜란드 연구진이 4억여원을 들여 만들어낸 결과물.
“밀도는 훌륭했지만 육즙이 많지않아 소금과 후추가 생각났다”, “씹는 맛은 진짜 고기와 비슷하지만 기름기가 부족하다” 3개 뿐인 햄버거를 시식한 음식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상용화까지는 20년쯤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실제 소고기를 생산하는 것보다 에너지 소모는 55%, 온실가스 배출은 4% 수준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하니 차세대 먹거리 개발 역사상 중대사건임은 분명해 보인다. 머지않은 미래, 인공 소고기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사람들과 동물원안의 소들을 상상해본다.
조금은 한산해진 계곡, 옆 마을서 새벽버스 타고 나왔다는 옥수수 할머니. 광주리 속 듬성듬성 이빠진 못난이 옥수수가 정겹고, 우리 아이들 보며 시작된 손주 자랑이 구수하다. 휴가 막바지 그렇게 가슴 속 추억하나가 더해졌고, 자연에서 얻어지는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 더 깊어졌다.
황미란·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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