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부장 |
그때는 늘 그랬다. '호헌철폐',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매캐한 취루탄 냄새가 대학 캠퍼스에 진동하던 시대였다. 전두환 정권은 야만의 역사를 써내려가기 바빴고 나는 알 수 없는 결핍감과 불행한 느낌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희망없는 내일과 궁핍이 의식을 옥죄었지만 학교 도서관 참고열람실에서 책을 읽으면서 그 고통을 견뎠다. 책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까만 활자를 더듬어가며 읽기에 매혹된다는 건 분명 인간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1980년 중2때였을 거다. 방바닥에 신문을 펼쳐놓고 보던중 연재소설의 삽화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남녀의 성애장면이 묘사된 그림으로 내용역시 어린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최인호의 『불새』였다. 알수 없는, 궁금한 어른들의 세계를 훔쳐본 후 난 탐욕스럽게 지나간 신문을 뒤적이며 『불새』를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신문을 통해 '광주사태'와 전두환도 알게 됐다. 광주에서 “총칼을 들고 미쳐날뛰는 폭도들”을 전두환의 지휘하에 계엄군이 진압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5·18광주를 비롯해 크고작은 희생 위에서 8년간 대통령직을 누렸던 전두환 전 대통령. 드디어 '전두환 추징법'이 발효됐다. 1600억원의 미납금을 제대로 환수할 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늘 그렇듯 권력자의 언저리엔 강한 권력에 매혹된 이런저런 부류의 인간들이 얼쩡거린다. 미당 서정주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서정주는 1987년 전두환의 56회 생일에 바치는 시 '처음으로'를 썼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드소서/…'. 정말 낯뜨겁지 않은가.
불멸의 문학성을 가지며 한국 최고의 시인이라고 평가받는 인사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권력자에게 저런 찬양시를 바쳤다. 그가 전두환을 우러러보고 있을때 학생들은 '국화 옆에서'를 암송하며 시인의 깊은 시상을 공감하려 애썼다.
작가는 삶과 작품을 분리해서 평가받을 수 없다. 19세기말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에서 에밀 졸라는 지식인으로서 최소한 기본적 의무가 요구되는 시대를 외면하지 않았다. 부당한 권력에 거부할 줄 아는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했던 것이다. 반면 서정주는 일본 제국주의, 이승만, 전두환 등 전 생애에 걸쳐 명예와 권력을 추구했다. '떠돌이 창녀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 같은 변산격포로나 한번 와 보게'라는 빼어난 비유로 훌륭한 시를 쓴 그가 치졸한 행동을 반복했다는 점은 문학사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다.
수치심을 주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내 인생의 멘토가 되는 작가도 있다. 조지 오웰. 그는 지독한 반골이었다. 그는 빈곤과 좌절을 겪으며 권위에 대한 타고난 반감이 컸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존재를 인식했다. 그는 시대를 거슬렀고 파시즘, 전체주의, 교조주의, 스탈린 체제와 싸웠다. 그는 사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이단아였다. 조지 오웰은 자신이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싶어 했는지 분명히 알았다. 1·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대공황을 겪으면서 자신의 미적·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고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든 작가였다. 『카탈로니아 찬가』, 『위건부두로 가는길』, 『1984』 등은 지금의 우리 상황에서도 인용될 수 있는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이다. 20세기의 한 세기는 권력자에게 낯뜨거운 찬양시를 바친 서정주와 반골 지식인으로 치열하게 살다간 조지 오웰이 존재한 시대였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일은 참 중요하고 어렵다.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연명할 뿐이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그래도 이 삶이 기꺼운 것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의 삶에 갇혀 살지 않고 책 속에서 내 삶을 끝없이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 이만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전두환 비자금 환수의 마지막 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지금, 서정주와 조지 오웰을 읽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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