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덕재 시인·대전시 인터넷방송 PD |
그는 길 위에서 떠오른 여러 기억과 상념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공산성을 보면서 백제의 역사에 잠겼으며, 오서산 억새도 그려보았다. 어릴 적 학교에 심었던 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변한 모습에는 세월을 실감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의 여정은 길 위에서 길 찾기였는지 모른다. 인생길을 복기하며 자신이 남긴 흔적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췄을 것이다. 그의 여정에 많은 사람이 댓글로 응원을 보냈으며 정 과장의 고향길을 부러워했다.
최근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서 길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 저마다 계곡이 있는 산으로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로 향한다. 개중에는 복잡한 교통상황과 밤새도록 시끄러운 휴양지의 풍경을 지우고 싶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휴가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일상에서 벗어나고 피로를 풀기 위해서지만, 되레 후유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한병철 교수는 저작 『피로사회』에서 과도한 성과의 향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라고 진단한 바 있다. 이어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며 현대인을 분석하고 있다.
사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경쟁의 피로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입시경쟁과 승진경쟁을 거쳐 퇴직금으로 차린 음식점은 길 건너편에 자리한 다른 음식점과 경쟁을 한다. 결국,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경쟁의 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시라도 경쟁에서 벗어나려고 휴가를 즐기는 것인데 가끔은 휴가의 목적을 상실한 채 피로감을 더 안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가 집이라며 우리가 생각하는 집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집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의 집도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마음을 받쳐줄 피난처가 필요하다'며 곳곳에 있는 집의 의미를 파헤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길 떠나기는 피난처를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 윤동주가 1941년에 발표한 시 '길'을 보면 인생의 행로를 뜻하는 길의 의미를 이렇게 적고 있다.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는 삶의 연속성을 길을 통해 보여주며 존재의 근원을 길에서 찾고 있었다. 소설가 김훈도 마찬가지. 그는 산문집 『자전거 기행』을 통해 '강은 인간의 것이 아니어서 흘러가면 돌아올 수 없지만, 길은 인간의 것이어서 마을에서 마을로 되돌아오고 모든 길은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이라며 길에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휴가를 즐기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오랜만에 길을 떠나면서 휴대전화 충전기부터 챙기고 있지는 않은가. 아이스박스에 시원한 맥주를 꼼꼼하게 챙기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삼겹살을 살까 목살을 살까 고민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시인 황지우가 '노스탤지어'라는 시에서 '나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 것은 우리가 걸어야 할 길과 돌아볼 길은 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휴가는 인생의 길 찾기였는가, 아니면 내비게이션의 단순한 길 찾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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