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신나는 방학 날, 즐거운 방학 보내라는 희망찬 메시지보다는 2학기 때는 더욱 잘 해보자는 식의 훈계(?) 가득한 인사를 건네는 내 자신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나의 모습에 살짝 화가 났다.
새 학급을 맡으면 늘 다짐하는 게 있다. 우리 반 학생들에게 다른 것보다도 '사랑'을 주는 선생님이 되자는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게 어려운 내 성격 때문에 늘 무서운 선생님으로 비춰지는 내 모습이 아쉬워 그런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으로 학생을 지도하기란 나에겐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 우리 아들이 책꽂이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지나간 일기장과 편지통을 찾아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일기장과 편지들을 꺼내 읽으며 이런 저런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엄마와 아빠의 연애 편지, 그동안 제자들에게서 받은 편지, 아이들이 유치원 때 쓴 그림일기와 1학년 때 삐뚤삐뚤 틀린 글씨로 써내려간 일기장들을 보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했다.
“엄마랑 아빠는 언제 만났어요?”,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요?”, “엄마는 이 편지 준 제자, 아직도 기억나요?”, “내가 1학년 때 갔던 수영장 또 가요.”, “내가 유치원 때 이렇게 사람을 웃기게 그렸네요.” 등등.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추억보따리들이 펼쳐졌다. 그 날,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가끔은 '추억'이라는 게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누가 그랬다. 추억이 아름다운 건, 좋은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2006년 내가 가르쳤던 6학년 제자들과 했던 약속!! 졸업을 하며 너무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반신반의로 했던 그 약속-너희들이 스무 살이 되는 2013년 6월 6일 6시에 만나자-을 나는 한 동안 잊고 있었다. D의 문자를 받기 전까지. 대학입시를 앞둔 아이들이 그 약속을 기억할 리 없을 거라 생각했다.
D는 약속한 날짜를 며칠 앞두고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저희들과 한 약속, 잊지 않으셨죠? 그 날 꼭 봬요.'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7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서로를 금방 알아봤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어느 새 2006년 6학년 6반 교실에 앉아 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 내가 수업 중에 했던 말, 꾸중했던 일, 함께 했던 수학여행과 학예발표회, 체육시간에 즐겨했던 보디가드 피구 이야기 등 각자의 추억 보따리들을 꺼내 놓으며 한참을 떠들어댔다.
그러다 한 아이가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흑백으로 된 학급사진 표지에 전체 학급 친구들이 써 준 편지들이 묶여있는 롤링페이퍼(?)였다. 사진 속엔 우리의 7년 전 모습이 담겨 있었고, 한 장 한 장 사연 속에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선생님을 만나면 꼭 보여드리려고 가져왔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잠시 울컥했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는 멋진(?)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올해 만난 우리 반 꼬맹이들에게도 난 추억 속의 그 어떤 의미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를 생각하며 2학기도 최선을 다해 힘차게 파이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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