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를 억압한 후 우발적으로 피해자의 금품을 훔쳤다면 강도일까, 절도일까.
2012년 10월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20만원을 주고 성매매를 하기로 한A씨와 여성 B씨. 이들은 함께 대전 서구 용문동에 있는 S 모텔 201호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A씨는 B씨의 외모와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돈을 주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갑자기 B씨를 침대에 쓰러뜨린 후 폭력과 협박으로 강제로 성관계했다.
이어, 이불로 여성을 덮어씌워 반항하지 못하게 한 다음, 탁자 위에 있던 여성의 지갑에서 현금 11만7000원과 주민등록증을 가져갔다.
이 범행으로 기소된 A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강간과 함께 강도죄도 적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는 판결에 불복했다. 강도가 아니라 단순 절도라는 이유에서다.
A씨 측은 항소 이유서에, “피해자의 재물을 가지고 갔다 하더라도 당시 피해자는 외포(畏怖)된 상태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는 절도죄에 해당할 뿐 강도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썼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이원범)는 강도죄를 적용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절도죄를 적용해 A씨에 대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이렇다.
A씨가 금품을 훔치기 위해 여성에게 폭행과 협박을 가한 것이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재판부는 “폭행, 협박에 따른 억압 상태를 이용해 재물을 취득한 경우도 아니고, 처음부터 재물 탈취 계획 하에 이뤄졌다거나, 양자가 시간적으로 극히 밀접돼 있는 등 강도죄 성립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시 말해, 여성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 A씨가 금품 등을 꺼내 가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고, A씨는 우발적으로 금품 등을 가져간 것으로, 강취를 위해 폭행 또는 협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설령 피고인이 지갑 속 현금을 가져갈 당시 피해자가 피고인의 폭행 또는 협박으로 반항이 억압된 상태였다 하더라도 강도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며 절도죄로 판결했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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